술 떨어진 밤 술 사러 간다
날벌레들 싸락눈처럼 몰려드는
가로등 밑 공중전화
똑, 똑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똑, 똑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집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소를 닮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축축한 달빛이 일렁인다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
몰래 귀 기울이다 철커덕
수화기 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켜를 놓친 순간
나뭇잎도 지상(地上)의 불법체류자가 되나니,
불법체류자들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밤늦도록 사각거린다
어느 늦은 밤 불법체류 노동자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고향으로 전화를 걸었나 봅니다. 이 고즈넉한 풍경을 시인은 청각의 환치 방법으로 묘사해냅니다. 이 빼어난 이미지는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가 <고향집 두드리는 소리>로,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이 불법 체류자의 목소리인 <사각거림>으로 완성됩니다. 공중전화부스에서 두런두런 알아들을 수 없는 타국의 말이 이리저리 지상을 떠도는 바싹 마른 낙엽소리인 것은 타국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이 계절처럼 더 깊어졌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박후기 시인
1968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마음의 무늬」 외 6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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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