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빛과 예언이며 또한 어둠과 상처였으니, 모든 기도는 그를 통해 전송되었지만 그로 인해 혼선도 빚어졌다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 주기도 하였지만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기도 하였지만 아이의 가출을 부추기기도 했다
취한 자나 떠돌이 개가 오줌을 갈길 수도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막다른 곳에서 막다른 자에게 신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요즘 신도시에는 전깃줄이 땅 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전봇대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봇대 서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되면 왠지 모를 고즈넉함이 밀려옵니다. 시골마을에서 도시의 산동네까지 전선 하나로 모두를 잇대어 주던 때문일까요.
이 시에서 전봇대는 전력을 전달하는 역할 외에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군요.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하고,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하고,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기도>하니 말입니다. 사람 시선 높이의 그 둥근 여백에 신산한 세상살이가 파노라마처럼 붙여졌다 떼어지는 걸 봅니다. 고통스러운 세상에 대해 여전히 묵묵부답 중인 신의 큰 뜻을 알 수 없듯,시인은 수없이 전봇대에 붙여오는 딱지와 사람들에게서 그 막막함을 보았지 싶습니다.
박제영 시인
1992년 <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푸르른 소멸-플라스틱 플라워> <뜻밖에>, 산문집 <대화 그 열린 텍스트>, 번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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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