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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한줄의노트] 전봇대
사회

[시한줄의노트] 전봇대

양산시민신문 기자 276호 입력 2009/04/15 11:00 수정 2009.04.15 11:02

벽과 벽, 골목과 골목, 허공과 허공, 막다른 사이에는 언제나 그가 서있다

그는 빛과 예언이며 또한 어둠과 상처였으니, 모든 기도는 그를 통해 전송되었지만 그로 인해 혼선도 빚어졌다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 주기도 하였지만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기도 하였지만 아이의 가출을 부추기기도 했다

취한 자나 떠돌이 개가 오줌을 갈길 수도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막다른 곳에서 막다른 자에게 신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요즘 신도시에는 전깃줄이 땅 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전봇대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봇대 서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되면 왠지 모를 고즈넉함이 밀려옵니다. 시골마을에서 도시의 산동네까지 전선 하나로 모두를 잇대어 주던 때문일까요.

이 시에서 전봇대는 전력을 전달하는 역할 외에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군요.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하고,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하고,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기도>하니 말입니다. 사람 시선 높이의 그 둥근 여백에 신산한 세상살이가 파노라마처럼 붙여졌다 떼어지는 걸 봅니다. 고통스러운 세상에 대해 여전히 묵묵부답 중인 신의 큰 뜻을 알 수 없듯,시인은 수없이 전봇대에 붙여오는 딱지와 사람들에게서 그 막막함을 보았지 싶습니다.

박제영 시인

1992년 <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푸르른 소멸-플라스틱 플라워> <뜻밖에>, 산문집 <대화 그 열린 텍스트>, 번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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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아 / 시인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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