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선인장 화분의 가시들이 날카롭게
형광등 아래에서 빛날 때마다
조금씩 일렁이며 엎질러지는
물 속의 집
2. 거리마다 나무들은
마르고 빈 가지들을 허공에 흔들었지만
어디서도 이파리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은 밤마다 벽에 봄을 낙서하고
아침이면 강으로 가
얼음 속의 돌들에게 읽어주곤 했다
3. 다시는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
출가하려므나, 어머니
저는 출가한 지 이미 오래인걸요
폭설 속에서 무엇을 계속 쓸고 계시는지
저도 그래야 할까요
한 걸음 걷고 나면 돌아서서
깨끗이 비질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4. 십 년 만의 귀가, 십 년 내내
면벽 중이신 어머니, 등에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하염없이 물 속으로 잔뿌리는 밀어 내리는
양파의 가계(家系), 나는
가부좌를 틀고 종달새처럼 노래하기 시작했다
고단한 가족사, 그 안에서 자라온 화자. 그리고 어머니의 종교가 갖는 의미. 흑백영화를 보듯 잔잔하게 흘러가는 네 편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출가란 세속의 집을 떠나 불문(佛門)에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 유약한 화자의 출가란 '나는/ 가부좌를 틀고 종달새처럼 노래하기 시작했다'의 결미가 강렬하게 말해주듯, 결국 미쳐져 가는 정신의 출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겨울 텃새인 종달새가 지저귀는 이유는 암컷을 부르기 위해서보다는 텃세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랍니다. 문득 슬프게도, 이 시에서 화자의 자리가 어디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용국 시인
1971년 강원도 태백에서 출생. 200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건국대학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건국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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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