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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이미륵을 떠나게 한 것은…..
오피니언

[화요살롱]이미륵을 떠나게 한 것은…

양산시민신문 기자 286호 입력 2009/06/23 10:01 수정 2009.06.23 10:06



↑↑ 박미경
영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대학 다닐 때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을 읽었다. 독일에 살던 한국사람 이미륵이 독일말로 쓴 것을 독일 유학 중이던 전혜린이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었다.
 
3.1 만세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쫓겨 혼자서 독일로 가서 살던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적은 책인데 그 이야기의 흐름이 담담하면서 따뜻하여 감동적이었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감동이 지속 되어 그 글에 대하여 생각하곤 하였는데, 나도 글을 쓸 때면 그렇게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가가 혼자 기차를 타고 중국 대륙을 거쳐 독일 땅으로 떠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를 생각했다. 그가 떠나던 1919년은 역사책에 나오는 아주 오래 전 옛날 같이 나에게 느껴졌었다. 그 옛날에 20세가량 되었던 내 또래를 거의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혼자 독일로 가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독일에 대한 어떤 정보를 미리 가지고 있었는지, 그냥 막연히 멀리 피하다 보니 독일까지 갔는지, 불안하지는 않았었는지,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지, 나였다면 어떻게 하였을지 생각하곤 하였다.
 
이미륵이 떠나던 때보다 60여년이나 지난 시대였지만 외국에 한 번 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신원 조회와 소양 교육을 거쳐야 하던 때였다. 외국 대학의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가더라도 국사나 국민윤리의 성적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 허락되었던 시대에 반도의 반쪽 안에서 살던 나에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60여년 전에 한복을 입은 어느 젊은이가 몇 날 며칠을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을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하였는데 실제 대륙 횡단 열차가 있었는지, 이미륵 그가 한복을 입고 갔었는지도 몰랐다. 세계지도를 펴 놓고 우리나라에서 독일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며, 내가 마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쫓기며 그 길을 지나는 것 같은 심정으로 그 길을 짚어 보았었다. "나라면 그와 같이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들었었다. 나라면 독립 운동을 하였을까부터 나라면 그렇게 독일로 혼자 갈 수 있었을까, 아니 갈려고 생각이나 해 봤을까, 가서 그렇게 자리 잡고 살 수 있었을까.
 
외국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정도는 하였겠지만, 내가 실제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에 간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 마치 우리나라를 빙 둘러 쳐놓은 높은 담 속에 내가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왜 그런 담 속에 나를 가두어 놓고 있었을까? 나의 소심함 때문이었는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대학 졸업할 무렵의 어느 날 한 지인이 미국에 UCLA라는 대학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만 들었는데도 가슴이 벅찼다.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돈이 얼마나 드는지도 모르는데 장학금을 받고 가면 된다고 하였다. 어떻게 장학금을 받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직장 생활도 하고 대학원을 가고 하다가 미국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학위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UCLA는 아니지만, 전공 분야에서는 그 학교보다 더 좋은 조건인 대학이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장학금으로 받아서 한국에서 있을 때 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마음껏 공부만 하면 되었고, 학교와 교수님들도 유학생인 나를 존중하며 잘 대해 주었다. 그 지인이 나에게 말한 유학 가서 공부하라는 것은 참 뜬금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말 때문에 나는 유학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말이 아니었으면, 내가 쳐 놓은 담 너머를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직업 때문에 늘 젊은이들을 만난다. 그 중에 많은 이들이 자신이 만든 담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을 본다. 그 담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제한일 수도 있고, 자신의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소망을 갖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이미륵의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꿈은 생각의 지경을 넘지 못한다고. 꿈꾸지 않은 것을 이룰 수는 없다고.
 
그들이 그 담을 넘어서 생각하기를 원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 한 그 말이 나를 그렇게 가슴 벅차게 하고 새로운 지경을 밟게 한 것처럼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지경을 보게 하는 가슴 떨리는 그 말을 해 주고 싶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그들이 눈을 떠서 그 담이라는 것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큰 세계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는 말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멀리 보고, 깊이 보고, 높이 보고, 넓게 보며 시간을 넘어서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손들이 스스로 쳐 놓은 담 속에 갇혀 있지 않도록 해야 하며 새로운 넓은 지경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처음 읽었던 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지금도 가끔 머릿속으로 이미륵 그가 갔던 길을 세계 지도 위에 그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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