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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조광수의 중국알기]무협의 코드로 보는 중국..
오피니언

[조광수의 중국알기]무협의 코드로 보는 중국

양산시민신문 기자 290호 입력 2009/07/21 09:57 수정 2009.07.21 10:05



↑↑ 조광수
영산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천하의 이태백도 젊어서는 무협을 꿈꾸었었다. 가슴의 작은 불만은 술로 삭힐 수 있으나 세상의 큰 불만은 칼이 아니면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잘난 사람들은 외롭기 마련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이상은 높은데 좌절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분노와 한을 다듬으려 한적하고 자유로운 세계인 강호를 만들어 내는 일이 바로 이태백 같은 문인들의 작업이었다.

강호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무림의 세계는 이렇듯 출세(세속적 욕망을 벗어남)와 입세(사회에 투신하여 관직에 나섬) 사이에서 갈등하던 지식인들의 로망이 되어왔다. 강호와 무협의 세계는 정작 무림의 고수가 만든 것이 아니고 문인들의 창작인 것이다.
 
중국에서 무협의 역사는 꽤 오래된다. 사마천이 2천년도 더 전에 '사기'에서 협객 열전을 기록하며, 난세에 무협의 의미를 긍정한 것이 효시이다. 사마천은 죽음에는 태산 같은 죽음과 문자 그대로 깃털처럼 가벼운 구차한 죽음이 있다고 전제하고 의리와 명분으로 태산 같은 죽음을 선택한 협객들을 칭송하고 있다.

중국의 가장 대중적인 소설인 '삼국지'나 '수호지'에는 당연히 진한 무협의 코드가 들어있다. 마오쩌둥도 1940년대 초 소련에 유학하고 있던 아들들에게 책을 보내면서 본인도 소시적에 즐겨 읽었던 무협 관련 책들을 포함시킨 적이 있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점화도 무협 코드를 활용했다. 체조선수 출신 주자가 갑자기 공중 부양을 해서 벽을 타고 옆으로 축지법처럼 뛰어 점화하는 모습은 과연 중국만이 할 수 있는 연출이었다. 중국 감독들은 경지에 오르고 나면 누구나 꼭 무협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리안의 와호장룡, 펑샤오강의 야연, 천카이거의 무극, 장이머우의 황후화나 영웅, 천커신의 명장, 청샤오동의 동방불패 등이 그 예인데,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평가하면 절반 정도만 성공하는 것 같다.
 
나도 워낙 무협의 세계를 동경해 청춘의 한 대목을 뚝 떼어준 바 있는데, 특히 유학 초기 진용(金庸)의 작품에 꼬박 1년 동안 빠져 있었던 것은 참 즐거운 경험이었다. 진용은 과연 무림계의 맹주답게 글발과 내용 모두 독보적이다. 그의 무협지는 철학적으로 심오하기까지하다. 그리고 아주 중국적이다. 
 
최근에 '잠복(潛伏)'이란 중국 드라마를 봤다. 2008년 한해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 중 하나로, 지금도 중국 포탈사이트에 들어가 잠복의 첫 자만 쳐도 바로 이 드라마로 연결이 될 정도이다. 아직 한글 자막으로 된 내용은 볼 수 없으나, 10초 정도의 광고만 봐주면 30집 전회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우선 연기자들의 연기가 기가 막히다. 그리고 상황 전개가 자연스럽고 속도감이 있다. 이데올로기 냄새도 안 나고, 사람 향기가 나는 그런 드라마다. 첩보 스릴러라는 장르도 근사하고, 중일전쟁 말부터 국공내전을 거치는 시기도 흥미진진하다. 대사도 압축적이고 재미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중국학 교재로 채택해 쓴다는 소문이 과장이 아닐 것이다.
 
컴퓨터 화면으로 눈이 침침해지도록 보면서 나는 중국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우선, '손자병법'부터 '육도삼략' 그리고 '삼국지'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언급되는 갖은 전략들을 다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허허실실, 성동격서, 이이제이, 고육지책, 이간계 같은 내용들이 아주 교본처럼 표현되고 있었다.

다음, 사람을 다루는 노련한 방법들이 잘 묘사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겐 무엇이 약인지, 돈 가진 사람에겐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허풍스럽고 타인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손보는 지 등에 대해 정말 경우에 맞게 꾸몄다. 중국인들이 무섭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드라마다.
 
끝으로 뭣보다 어리숙해보이는 주인공의 순한 얼굴 뒤에 감춰진 강인함과 집요함이 압권이었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상대를 사지로 몰 궁리를 하고 있는 모습에선 전율이 느껴졌다. 가장 고수이자 마지막 원수는 늘 제일 가까운 사람이란 무협지의 공식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회를 보고난 감상은 세상에 쉬운 중국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느낌 그대로였다. 
 
문제는 무협이 유행하는 공간, 무협이 발언하는 시대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협이 인기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살이가 팍팍하다는 뜻이다. 시대와 불화하고 좌절하는 무리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중국에 이른바 무협경제가 성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대목은 아니다.
 
한편으론 욱일승천하는 국력과 번쩍번쩍한 성장으로 역동적인 중국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론 무협영화와 무협소설 그리고 무협잡지와 무협게임들이 성행하는 혼탁한 강호의 중국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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