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빛과소금]인동초의 삶
오피니언

[빛과소금]인동초의 삶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9/08/25 09:46 수정 2009.08.25 09:56



↑↑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 양산시민신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동초'(忍冬草)라는 말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 언급한 건 1987년이다. 통일민주당 상임고문 시절인 그해 9월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은 김 전 대통령은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 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 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연설을 남겼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동초'는 김 전 대통령의 상징처럼 불리게 됐다. 55차례의 가택연금, 6년여의 옥고, 두 차례의 망명, 사형선고 등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형언할 수 없는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결코 독재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이 땅에 민주, 평화, 인권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는 놀라운 족적을 남겼다. 최초로 남북정상 회담을 실현시켜 불신과 긴장의 남북관계를 평화와 신뢰의 관계로 전환시켰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우리 국민들의 긍지를 드높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그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진정한 평가는 역사에 맡길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분의 일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흡한 부분은 많이 있었지만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인생철학에 따라 행동하는 양심으로 인동초처럼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길에서 때론 추운 겨울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봄이 온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후회 없는 인동초의 삶을 살자.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