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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450년 전의 사랑이야기..
오피니언

[화요살롱]450년 전의 사랑이야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296호 입력 2009/09/08 10:45 수정 2009.09.08 10:45



 
↑↑ 유병철
양산대학 기업경영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지난 8월 여름휴가 때 '한국의 정신문화 수도'라고 일컫는 안동으로 갈 기회가 생겨 안동대학교 박물관을 관람하였는데 그 중에 450년 만에 세계인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유물이 있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남편(이응태, 1556~1586)을 저승으로 떠나보내면서 부인이 애절한 사연을 담아 쓴 한 통의 한글 편지와 머리카락을 섞어 만든 한 켤레의 미투리가 남편의 관속에 있었다. 미이라에 대해서는 국내 매스컴을 통해 '조선판 사랑과 영혼' 등으로 보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 지오그래픽', 고고학 잡지 '엔티 쿼티'에 게재되어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1586년)를 현대문으로 고쳐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중략) 당신 내 뱃속에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중략)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필자는 450년 전 편지를 읽어 보고 미투리를 보는 순간 "나는 가족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가?"에 대해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가족'이 그렇다. 과연 가족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미치 앨봄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가족이 지니는 의미에 관해 이렇게 읊는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게/바로 그것이었어/소위 정신적인 안정감이 가장 아쉽더군/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봐 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지/가족 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 순 없어/돈도 명예도'
 
가정은 마음의 평화와 희망을 가져오고 성공과 행복의 터전을 제공하는 무대여서 생명 다음으로 가정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소중한 것에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족 구성원은 언제나 서로 가까이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구성원 어느 누구의 행복 또는 불행은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각자가 먼저 행복하고 이를 일차적으로 '나'의 확대형인 가족에게 확장해야 한다. 내가 있어서 행복한 그런 가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족 구성의 시작인 결혼은 선택이지만 여타의 가족은 선택이 아니라 피로 맺어진 관계여서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 가족 구성체는 오늘날에 와서 점차 밀도가 약해지고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우리들이  가장 힘들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무엇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족일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숙도에 따라 가족은 점차 '나'중심에서 '우리'중심으로, 즉 독립성에서 상호의존성으로 성숙해간다. 현대사회는 물질문명과 테크노 미디어의 위세에 눌려 가족끼리 사랑을 나누기 위해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가족과 자녀들에게, 특히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할 텐데…"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로 생각해 보면 휘티어가 말한 바대로 가장 슬픈 말은 "그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다.
 
450년 전 남편을 향한 부인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편지를 오늘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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