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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살롱]우리 정서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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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살롱]우리 정서의 명암

양산시민신문 기자 299호 입력 2009/09/29 14:01 수정 2009.09.29 02:02



 
↑↑ 정혜국
양산대학 사회복지보육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모든 나라의 국민들은 그들만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에 특화된 고유한 정서를 공유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지리적으로 동·서·남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으로는 강대한 대륙 세력에 막혀 있다. 역사적으로는 타국을 지배한 적이 없었고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주권을 온전히 빼앗긴 적도 없었다. 이로 인해 한, 중, 일 3국은 근거리에 위치한 국가임을 감안하면 매우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 올 수 있었다. 이는 유럽의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이 라틴어에 근간을 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자명하다.

‘정서(emotion)’의 어원은 ‘뒤흔들다, 교란시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emovere’이다. ‘정서’라는 어휘가 한 국가의 국민들의 불안, 분노, 애정, 슬픔 등을 반영한다고 한다면, ‘감정’이라는 단어는 개인적 차원과 관계한다. 본 칼럼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니는 감정들의 일반적인 성격, 즉 정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정서는 전통적으로 유교 사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데, 맹자의 4단(四端)에는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있다. 측은지심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며, 수오지심은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사양지심은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을 뜻하며,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뜻한다.

얼마 전 대통령 중 한 분이 예기치 않게 돌아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이는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던 스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추모’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생전에 대화조차 한 번 나누어 보지 못한 이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 인간의 죽음을 가엾게 여기는 ‘측은지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근자에 못생긴 외모와 이로 인한 성장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골의 휴대폰 판매원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거듭난 폴 포츠(Paul Potts)라는 사람이 회자되고 있다. 그에 대한 현재의 신드롬은 유년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낸 것에 대한 경탄과 함께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안타깝고 가엾게 여기는 측은지심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처음부터 재능을 인정받고 거듭된 훈련을 받아 현재의 성취를 달성했다면 지금과 같은 열성적인 지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진 정서가 위와 같이 아름다운 면모만을 지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온전함’, ‘완벽함’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는 때때로 지나친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지지도를 보면, 임기 초에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다가 임기 말이 되면 그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하는 현상이 반복됨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사표(師表)로 자주 꼽히는 이가 대통령이나 역대의 왕들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나 구국의 영웅임을 볼 때,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가 국가통수권자에게 완벽함을 기대한 나머지 이에 실망하고, 최후까지 한결같은 길을 걸은 이들을 존경하는 성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성추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에서는 ‘인간’으로서의 빌 클린턴과 ‘대통령’으로서의 빌 클린턴을 구분하여 인간으로서의 그의 행위를 비판하였으나,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이와 같은 성추문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상상해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부분이 지도자가 되는 순간부터 그에게 극단적인 수준의 도덕적 완벽성을 지향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완벽함, 온전함을 추구하는 성향은 때로는 자신과 다른 것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현상을 빚기도 한다. 양산지역 특수학교 설립지연으로 고민하는 장애인부모회 최태호 회장에 의하면 ‘양산에서 특수학교가 이토록 외면 받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혐오시설도 아닌 특수학교를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도 모르겠다’고 한다(양산시민신문 2009.9.8).

우리나라의 정서는 인(仁),의(義),예(禮),지(智)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강조하고, 도덕적인 영역을 중시하는 성향이 무척 짙다. 이러한 성향은 근본적으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필요한 경우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하고, 완벽하지 않은 타인에 대해 너그러이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의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면서도 매사를 보다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포지티브 정서를 함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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