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제 무게를 덜어낸 나무들
떠나간 애인의 단발머리를 추억하듯
여남은 이파리를 말없이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창틀에는 닦여 나가지 않은 오래된 먼지들이
여기저기 둥글게 달라붙어 있고,
감나무에는 홍시 몇 개가
얼굴 붉어지도록 지상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다 아물지 못한 것들만 자국이 되는 시간
말라버린 꽃대 근처를 기웃거리며
밑줄도 긋지 않고 저린 안팎을 혼자 읽어가다가
어느 행간에 굵게 긁혀진 상처를 읽습니다
하나, 둘 발목이 돋는 시간
상처도 등을 맞대면 환해지나 봅니다
벌써 서산(西山)은 캄캄해지고,
오늘 또 누군가 나를 떠메고 저물어간다고
써야 하는데
고단한 불빛들은 벌써부터 깜박거리고
양형근 시인
2001년 『시선』으로 등단. 시마을 동인. 시집,『수채화로 사는 날』,『안부가 그리운 날』,『길은 그리운 쪽으로 눕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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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 시인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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