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신현경 영산대학교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대학교로 가기 위해 집에서 내려와 큰 길에서 좌회전하면 나타나는 주유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날 아침 주유소에서 동료인 박 교수를 만났다. 그는 막 주유를 끝내고 아줌마가 차 안 청소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슬며시 내게 다가와 ‘이천원만 주면 차 내부를 청소해준다’고 귀띔해 준다. 주유를 마치고 차 안의 뿌연 먼지를 보며 아줌마한테 내부 청소를 부탁했다. 그런데…. 아줌마 왈, “아줌마가 직접 하이소!” 하는게 아닌가.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기가 찼다. 후배였던 박 교수가 당황하며 “제가 해 드릴게” 하고 다가왔다. 그리고 함께 내부 청소를 했다.
주유소 아줌마는 남자한테는 관심을 보이면서 친절하고 순종적이다. 그러나 똑같은 고객인 나를 단순히 여자로 구분하여 아줌마라는 개념으로 본다. 이러한 인식 저변에는 마음으로 보는 눈, 즉 관심이 없음에 공연한 질투가 들어있다. 세상을 대하는 인식이 자신 기준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줌마 행색은 너무나 선명한 연두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줌마 색감이 유치해서 색에 따라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그 차이를 보지 못한다. 옷 색으로 보면 마치 아이들처럼 원색의 세상에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널려있는 수 많은 색들을 보기는 하지만 그 중간에 있는 색은 자신의 느낌이나 체험이 없어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색에 의한 성숙 단계로 보면,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와 같은 색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각력이 객관화되기 이전에 어린 아이들이 보는 세계는 10가지 정도의 원색으로 구분해서 본다. 어린 아이들이 자기중심의 세계에서 보는 단순하면서도 튀는 원색은 그 나이에 맞게 귀엽고, 밝고, 예쁜, 세상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시각력이 성숙하면 색감도 함께 성숙하고 감성과 함께 조화로운 색감이 발달한다.
색감이 육체만큼 자라지 못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자신의 감성이 메말라 자기느낌과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진정으로 자기에 대한 느낌이 자신 안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텅 빈 마음이 바깥만을 향하여 있다. 다시 말해 아이들처럼 자기 중심으로, ‘나 밖에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야말로 나 자신 이외는 모른다는 말이다.(우리말의 깊고 오묘함이여) 색감이 원색적이라는 사실은 이분법적 인식과 사고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래도 아줌마 변명을 하자면 색이 좋은 옷은 비싸서 사 입을 수 없는 형편을 들 수 있겠다. 싸구려 염색 물감으로는 싸구려 옷감의 색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염색하는 사람들 탓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비슷한 일을 하는 아줌마들의 옷 색도 그렇게 유치하지는 않다. 색감이 성숙한 사람은 유치한 색의 옷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러니 염색 공장에서도 좀 더 좋은 색상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값이 싸면 색이 유치해도 구매하는 사람들 때문에 잘 팔리니까 또 만들어내게 된다.
좋은 색의 색상디자인이 고급 옷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시장의 옷 색과 백화점의 옷 색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이 도시 어디에서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개념화된 색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경남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간판의 현란한 색들은 산만하게 어지러운 원색으로 아마 우리나라에서 색감이 가장 유치할 것 같다. 서로가 조금이라도 섞인 조화로운 미를 자아내지 않고 자기만 눈에 튀고 싶어 난리들이다.
같은 빨강색이래도 100여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빨강에는 삼원색, 빨강, 노랑, 파랑이 다 들어 있어 그것의 반대인 초록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 좋은 색은 인공으로 만들어 아무 색도 섞이지 않은 물감의 원색이 아니라 자연색과 같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조화로운 색을 말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로의 반대되는 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조화로울 수 있다.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색이 있어 그 사이를 볼 수 있는 양산시민들의 색감이 부산과 울산 사이에 있는 양산의 아름다움을 꽃피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