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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수의 중국알기]베이징 컨센서스와 화평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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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수의 중국알기]베이징 컨센서스와 화평굴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305호 입력 2009/11/10 09:35 수정 2009.11.10 09:35



 
↑↑ 조광수
영산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2009년을 정리하는 중국 지도부와 지식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다가 떠오른 속담이 두 개 있다. ‘불감청 고소원’이란 말이 있다. 차마 미리 부탁할 수는 없지만 기꺼이 고맙게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그런가하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는 말도 있다. 아마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적 경기침체에 대처하면서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묘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숨기려고 해야 숨길 수 없는 게 두어 가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절실한 마음과 주머니가 비어 썰렁한 곤궁함은 참 숨기기 어렵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바로 힘 있음이다. 아무리 아닌 척 자세를 낮추고 있어도 힘 있음은 표가 나기 마련이다. 와호장룡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마침 뜻하지 않은 시비가 생겨 자연스레 힘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면 더욱 폼나는 일이다.

미국식 세계화를 밀어부쳐 오던 미국이 정작 자기 집에 나는 불을 막지 못해 안절부절 세계의 걱정거리가 돼버린 대목에서 중국은 비축해 왔던 힘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주장해오던 화평굴기론이 힘을 얻고 있고,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가 중남미나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고 있다.

먼저 화평굴기부터 살펴보자. 화평굴기란 중국은 평화적으로 강대국화하겠다는 뜻인데, 두 가지를 고려해 만든 용어다. 첫째, 중국 경제의 역동적 성장 결과 자신감이 생긴 덕이다. 곡절과 사연 많았던 근현대를 정돈하고 이젠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둘째, 중국의 성장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중국위협론이니 중국붕괴론이니 하며 경계하는 서방이나 이웃에게 중국은 조화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하려 함이다.

중국 사상의 핵심은 한 마디로 조화 즉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화인데, 지금 후진타오 정부가 강조하는 조화사회론이란 통치 이데올로기도 이 맥락이고, 중국 대국화를 포장하는 평화 철학으로 화평굴기도 바로 이 맥락이다. 물론 지향이나 가치와 현실이 꼭 같지는 않다. 중국의 근현대사가 외부 세력에 침탈당한 슬픈 역사이긴 하나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평화애호만 해왔다고 주장하긴 어렵다. 아무튼 중국이 최근 30년 동안 안으로 정치사회적 안정 기조 위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 온 결과 이제 국제무대에서 보여 왔던 계산된 겸허의 모습을 벗고 있는 대목에서 우량한 전통인 화(和)를 새삼 강조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다음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에 대해 말해보자. 베이징 컨센서스란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응하는 표현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미국식 세계화를 뜻한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이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산이다. 그리고 이 확산 흐름은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의 친화성 모형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거나 아니면 동시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보다는 점차 시장과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식 세계화는 작년 여름 금융시장이 삐끗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로 확대된 이후 힘이 좀 빠졌다. 그 빈자리에 중국식 성장 모형인 베이징 컨센서스가 발언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식 개발 독재인 베이징 컨센서스는 우선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의 친화성을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제각기 형편대로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을 중시한다. 이런 내용은 중남미나 아시아의 덜 민주화된 나라들, 그리고 중국이 빚도 탕감해주고 공동 자원개발과 원조를 아끼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의 일부 나라들에서 수용되고 있다.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보기는 정말 어렵다. 벌써부터 성급하게 G2라고 부르며 중국을 미국과 대등하게 평가하는 것도 때 이른 호들갑이지만,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고 무시하는 것도 물정 모르는 얘기다. 2009년 현재 중국의 능력과 의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내공일 수밖에 없고, 그런 공력을 가진 고수는 강호에 없다.

강호에 고수가 없으니 끝으로 감히 한두 마디 첨언해 본다. 중국은 지금 기가 막힌 승세를 타고 있다. 실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대에서, 경우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시대를 넘어, 이제 대국의 위상인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대목 직전에 이르렀다. 자기 포장이 절실하다. 화평굴기는 중국식 소프트 파워인 화(和)의 표현이고,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식 개발 독재에 대한 요령부득의 자긍심이다. 이런 거대 구조의 변동을 지켜보는 이웃의 마음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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