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섭, 안종길, 오근섭….
민선시대 개막 이후 양산시를 책임지는 시장으로 일했던 사람들의 이름이다.
이들은 ‘양산시장’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불명예스러운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양산은 민선시대 시작 이후 모두 3명의 시장이 금품수수 등과 관련한 비리 의혹에 따라 임기를 마치지 못했거나 불명예 퇴진하는 사례를 남겼다.
이러한 전례를 의식한 듯 오근섭 시장 역시 ‘투명한 시정’을 강조하며 임기를 시작했지만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양산시장의 수난’에 동참하게 됐다.
민선시대를 연 손유섭 전 시장은 1998년 폐기물업체 허가와 관련해 편의를 제공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손 전 시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집행유예 처분으로 임기를 마치기는 했지만 구속으로 인해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점을 남겨야 했다.
손 전 시장에 이어 양산 시정을 넘겨받은 안종길 전 시장 역시 연임에 성공했지만 1998년 웅상지역 한 아파트 사용승인 과정에서 건설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2002년 구속된 뒤 2004년 시장직을 상실했다. 안 전 시장은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7천900만원을 선고받고 시장직을 상실한 뒤 아직까지 형이 집행되고 있다.
안 전 시장의 시장직 상실로 인해 2004년 보궐선거에 나선 오 시장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4대 시장으로 당선됐다. 오 시장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화 로비사건에 휘말려 한나라당을 탈당했지만 무소속으로 재임에 성공, 안정적인 시정 운영으로 3선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의 토착비리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동안 각종 개발사업을 둘러싼 의혹을 가지고 있던 오 시장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가 이루어지자 이에 대한 압박감을 못 이겨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양산시장의 수난사가 오 시장에게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러한 양산시장들의 수난은 ‘신도시 개발’로 대표되는 양산 지역의 특수성이 일정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1996년 양산이 시로 승격된 후 신도시와 공단 조성 사업 등이 이루어지면서 양산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따라서 경남에서 김해와 함께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양산은 크고 작은 개발 사업으로 인해 단체장들이 이해관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결국 이러한 의혹과 유혹이 민선시대 이후 3명의 단체장이 모두 불운한 임기를 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