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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살롱]채움과 비움의 합일,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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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살롱]채움과 비움의 합일, 흰색

양산시민신문 기자 310호 입력 2009/12/15 10:03 수정 2009.12.15 10:03



 
↑↑ 서은주
양산대학 아동미술복지보육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시작을 나타내는 색인 흰색은 빛의 가장 순수한 본체이며 빛을 대표하는 색이다.

흰색은 무채색, 색의 한계성 그리고 분할되지 않은 빛의 총체로서, 모든 색 가운데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빛의 색으로 상징되는 흰색은 깨달음, 비추임, 부활, 그리고 완전성을 의미하며 색들의 경계점, 빛과 텅 빈 것으로 검은색의 대칭 극이다. 단순함과 소박함을 상징하며 부정적인 의미로는 아직 정의할 수 없는 것, 그림자 같은 것이다.

모든 것을 그 자체에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잠재성인 흰색은 개방과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묘사될 수 없고 모든 영향에 개방되어 있으며 준비되어 있지 않은 어떠한 임무도 부여되지 않으며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어떠한 힘도 요구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색이다.

흰색이 심리적으로 긍정적 작용을 하는 것은 밝음과 빛의 관점 덕분이다. 흰색은 모든 밝음을 강조하며 순수함, 선함, 아무 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의 의미에서 순진무구함을 구현한다. 그러나 백색의 광선으로서, 부서지지 않는 빛의 충만함은 인간의 눈에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신성(神性)의 백색광선’은 빛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에 흰색이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흰색은 부활절, 성탄, 그리스도의 공현축일 그리고 성모승천의 의식을 나타내는 색으로 풍요롭고 경사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흰색이 가지는 신성력은 성탄절과 부활절을 기념하는 의식에 사용되는 색이라는 것에서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 경우에 흰색은 실제적인 현실을 포함한 우리의 삶이 영성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신체적인 존재가 소멸되는 인내를 감내하게 되면 신과 함께 거하게 된다는 것이라 하겠다. 키가 큰 자태와 빛을 발하는 흰 꽃인 백합은 마리아의 깨끗함을 구현하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이다.

흰색은 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차가우면서도 빛나는 품격을 지닌 달은 여성으로 인격화 되며 희랍의 아르테미스 여신, 중국의 관음보살, 폴리네시아의 힌나는 모두 희고 은색을 띤 여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신에 대한 흰색의 개념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삶과 완전하게 그려진 일원상이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밤하늘의 은하수는 초월에 관계가 있는 길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게르만인과 동양인들은 은하수를 ‘사후 영혼의 길’이라 생각하며 은하수 강변에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흰색 부처인 바이로카나는 수많은 불교 만다라 그림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부처의 상징은 영혼, 육체, 그리고 지혜와 연결된다. 인디언들은 흰색을 동쪽의 상징이며 신성시되는 것과 숭배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여겼고, 그와 반대로 고대 중국에서는 서쪽, 가을 그리고 비애를 의미하였으며 흰색 호랑이가 흰색의 원형이었다. 한국 후불탱화에서 덕과 복 그리고 대자대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의 흰색 의복은 만인과 일체 중생을 수용하는 어머니상을 나타내며, 이차돈이 순교시 흘렸다고 전해지는 흰 피도 자비심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러한 민담들을 통하여 흰색이 영성적인 영역이나 대단히 좋은 무엇 혹은 큰 상실 등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 삶에 있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 대면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흰색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개인적인 정신세계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며, 외부로부터 오는 경이로운 초월적 힘은 참여하는 사람의 자아로 하여금 갈등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흰색은 무채색으로서 생명의 결핍, 감정의 결여, 공허, 절망, 외로움과 불행을 나타내며 삶의 다채로운 의미들을 지워버리는 고행, 금욕 그리고 차가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칸딘스키는 “흰색은 모든 색채, 모든 그림의 표징과 본질이 사라져버린 세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세계는 너무 높아서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곳에서부터 엄청난 침묵이 내려온다. 물질적으로 서술하면 넘을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는 끝없이 펼쳐진 차가운 장벽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 같다. 이와 같은 이유로 흰색은 절대적인 커다란 침묵으로서 우리의 정신에 작용한다”라고 하였다.

모든 색의 결합이며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절대성. 채움과 비움, 그리고 이것의 합일을 표현하는 것이 흰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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