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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진영 대구보건대학 물리치료과 | ||
ⓒ 양산시민신문 |
“휴~ 내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좋은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도 안 돼! 중증 장애인이잖아! 내가 한다고 표시나 나겠어?”
한숨 밖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본 아이들 보다 훨씬 심한 상태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긴장도 조절이 되지 않아서 온몸이 뒤틀리고, 팔이 붙어서 구축이 오고, 다리는 고관절이 빠진 채로 돌아가 있고…. “도대체 희망이라곤 없는 곳이다. 난 여기서 하루 종일 고생이나 하다가 가겠지” 이런 생각뿐이었습니다.
처음 다녀온 후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 친구는 “어차피 그 아이들, 네가 운동시킨다고 낫는 애들도 아니야. 설렁설렁해 그냥, 힘 빼봤자 너만 힘들어”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며 방학 때 할 일도 없는데 실습 한 번 더 한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내가 조금 운동시킨다고 변할 애들도 아니다. 대충대충 하다보면 시간 잘 가겠지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 이 아이들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밝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오게 된 아이들이 대부분이며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순수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의 잘못된 생각은 금방 가셨고, 아이들의 미소가 너무 예뻐 저도 모르게 미소를 띄우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대충대충은 커녕 어설프지만 나도 물리치료사선생님을 따라 아이들의 몸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노력했고, 어설프지만 무언가 자극을 주게 되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아이들의 몸에 크지는 않지만 아주 조그마한 변화가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전 좀더 힘을 내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곳에 있는 아이들 중 유난히 제가 예뻐했던 현진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현진이는 뇌성마비아동입니다. 처음에 현진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6~7세 밖에 안 된 줄 알았습니다. 너무 작아서 말입니다. 알고 보니 현진이는 18살이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현진이가 제가 자기를 좋아해주니깐 절 알아보기도 하고, 제가 운동을 시켜주니 까르르 웃으며, 섭식 보조를 해주면 밥도 꼬박꼬박 잘 먹고, 안아 주다가 안아주지 않으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인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지만 날 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일하고 계신 보육교사 선생님들께서 현진이가 날 만날 때면 기분이 좋아 보인다며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쁜 아이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 물리치료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지만 이 분야에 큰 뜻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취직이 쉽지 않으니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일단 물리치료사 면허증만 따야지라며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하는 임시방편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배운 것을 토대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가질 수 있게 하겠다, 아픈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할 수 있는 치료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진이를 만나게 되면서 “내 손이 약손이었으면, 내가 신이였으면, 그러면 이 아이는 고통을 받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다른 아이들처럼 밖에서 뛰어 놀 수 있을 텐데, 먹고 싶은 과자도 마음껏 먹고 사탕도 먹을 수 있을 텐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습니다. 현진이를 위해서 “난 꼭 위대한 물리치료사가 될 것이고, 내 손을 통해 현진이가 아무렇지 않게 걸을 수 있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될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사는 게 너무 치열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경쟁하면서 무슨 일이든지 열을 올리고 1등이 되기 위해서 피땀을 흘려가며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만나는 그 시간들만은 빠르게 살았던 하루하루를 잊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꼭 1등이 아니더라도, 남보다 빠르게는 아니지만 느리게라도 하루하루 변화해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지만,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서 아이들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은 나에게는 축복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늘 가슴 뛰는 삶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내 마음도 내 생각도 내가 주인이니까. 그러나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 의지가 아닌 이들의 미소와 행복이 나에게 전해져서 설레었습니다. 이들을 생각하면 전 여전히 지금도 설레고 있으며, 또 이들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져서 행복바이러스같은 나의 삶이 될 수 있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저에게는 물리치료사로서 더 커가는 밑거름이 되었고, 작은 힘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느리지만 조금의 변화라도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느림의 미덕으로 나에게 행복을 전해준 이 아이들을 절대 잊고 싶지 않고, 이 아이들의 행복바이러스가 모든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리고 전 꼭 멋진 물리치료사가 되어서 이 아이들을 낫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이 아이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꼭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진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누나가 꼭 낫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