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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이번 학술발표회는 양산의 인물 ‘이징옥’에 대해 양산대학교 엄원대 교수가 ‘이징옥 설화와 복권에 관한 고찰’, 경북대학교 정병호 교수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본 이징옥 장군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흔히 ‘이징옥의 난’으로 알려져 있는 이징옥은 조선 세종 때의 무인으로 1399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서 중추원지사 이전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 초에 김종서를 따라 북변에 종군하여, 1424년에는 경원진 첨절제사로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했다. 1436년 회령부판사로서 여진족의 추장을 살해했으며 이 해 경흥도호부 판사에 올랐다. 1453년 정권을 획득한 세조가 김종서의 심복이라 하여 파직시키자 함경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여진족의 후원을 약속받은 후 병력을 이끌고 종성으로 진격했으나 종성판관 정종 등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피살된 인물이다.
이날 엄 교수는 이징옥의 복권에 중점을 두며 “이징옥은 제대로 복권이 되지 못 한 탓에 그를 기리는 기록물이나 건축물 따위가 별로 없다. 또한 한 많은 죽음이기에 마땅히 무속인들이 섬기는 군웅대신이 될 법도 한데 그 반열에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며 “이징옥은 마땅히 충신으로 기려져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일차적으로 양산이씨문중을 중심으로 한 우리 고장 사람들이 맡아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또 정 교수는 “그는 출중한 무예, 투철한 신념, 청렴결백한 자세로 북방 변경을 방어하고 개척한 무장으로서의 삶에 전념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장군”이라며 “정치적 사건에 걸려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이것이 그의 무장으로서의 공을 삭감하지는 못한다. 승자의 기록에서는 반역자로 되어있지만 그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를 걸출한 장군으로, 충신으로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발표에 이어 양산문화원 김영돈 원장, 양산향토사연구소 이종관 소장, 부산대학교 이성혜 교수, 경북대학교 오용원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네 사람은 두 사람의 주제 발표 내용에 대해 질의를 하며 충신으로써 평가받아야 할 그가 왜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