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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병풍의 주인인 류재년(63) 원장은 서예와 서각에 조예를 지니고 있는 예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독한 마음을 먹고 ‘금강경’을 옮겨써 병풍을 만든 것.
금강경은 반야심경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불교경전으로 금강과 같이 견고해 어떤 번뇌와 집착도 깨뜨려버릴 수 있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11월 초부터 쓰기 시작해 한 달여만에 완성한 금강경은 모두 12폭, 5천149자다. 평소 반야심경을 즐겨 써오던 류 원장은 사경 가운데 제일 긴 분량의 금강경을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부인 권경인 씨의 권유로 금강경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글자 수도 많고 해서 쉽게 엄두가 안 나더라는 류 원장은 그 때를 떠올리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부터 류 원장은 평소 친구들과 고서화를 감상하고 해석하던 선친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서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손수 창작에 전념하게 된 것은 1979년, 특이한 필법을 구사하던 해인사의 일타스님을 찾아가게 되면서다.
류 원장은 일타스님께 글 한 필을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멋쩍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 그길로 곧장 벼루와 붓을 장만했다. 그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30년째. 나름대로 경륜을 갖춘 그는 홀로 글쓰기에 정진해왔다.
자신이 직접 옮겨 쓴 금강경 병풍을 보고 있는 류 원장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금강경을 옮겨 썼다는 것도 놀랄만한 것이지만 단순히 옮겨 쓰기에 그치지 않고 글귀들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 자신만의 신념을 넣었기 때문이다.
류 원장은 “금강경 안에 내 신념이 모두 들어있다. 이 작품은 내 유언장과 같은 것”이라며 한 폭 한 폭을 설명했다.
한 폭의 3층탑 안에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무신불립(無信不立), 필요인간(必要人間), 서기운집(瑞氣雲集), 능굴능신(能屈能伸) 등의 사자성어는 그의 신조를 알 수 있었다. 또한 12폭 아래에는 공통적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쓰여 있다. 화엄경(華嚴經)의 중심이 되는 글귀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 글귀는 류 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글귀라고 한다. 차례로 글을 따라 읽어 내려오면 마지막에는 가족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자신과 배우자, 자식 그리고 손자들의 이름까지 한 필 한 필 써내려간 글에서 가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류 원장은 “좋은 뜻과 좋은 글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 좋다”며 “무엇이든 돈이 되는 세상에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저 취미로서 순수하게 그림과 글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