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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경 영산대학교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아무도 강변에 눈에 번쩍 띄는 ‘청도를 사랑합시다’라는 구호를 피해갈 수 없다. 크고 원색적이다. 원색의 유치함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아무런 느낌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청도를 사랑하자고 외쳐댄다고 청도를 사랑하게 될까? 이 구호와 비슷하게 도시를 대상으로 노래하는 ‘I love Paris in the Spring time’ 이라는 노래가 있다.
상쾌하고 달콤한 멜로디가 봄의 파릇파릇함이 주는 싱싱한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파리의 사랑’으로 살아난다.
어디 노래뿐인가. 파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파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속 이미지들과 파리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 예술적 행사에서 파생되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서양 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급문화의 개념이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이젠 언어로 전달하는 개념적인 문자의 시대는 지나갔다.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서로 통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점을 모르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그 속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이 느끼는 감성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느낌을 수반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느낌도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청도의 문화 예술적 특성을 살리고, 다양한 방면에서 그것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서로 감응하기 위하여 그 이미지는 조화로움을 자아내야 뜻을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조화롭지 못한데 누가 감동할까?
양산시에서 위촉한 환경 미술에 관한 자문위원 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건너는 두 군데 다리 디자인에 관한 자문회의였다. 새로운 도시로의 부활을 꿈꾸는 활기찬 분위기가 있어서 좋았다.
시의 담당 공무원들이 한 주 전에 미리 연구실로 디자인을 가지고 와서 자문 받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도 드리고 다른 도시의 디자인 사례도 열심히 보여드렸다.
자문회의에는 열 명 정도의 위원들이 모여 하나의 다리를 두고 세 개의 디자인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평가를 하였다.
디자인 분야는 나를 포함해서 두 명, 건축과 토목 관련 전문가들, 시청에서 이 분야 소속 공무원들과 부시장이 참석한 회의였다.
내 눈에는 첫 번째 것은 전체적인 디자인도 그저 그렇지만 색이 너무 눈에 틔어 주위 경관과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나머지 분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디자인을 택했다. 그래서 다시 설득했다.
모두들 이해는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끝나고 일어서는데 옆자리의 디자인 전공 교수가 살짝 거들어준다. ‘신교수님 말씀이 맞아요.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웃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웃으면서 끝냈다.
그렇지만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내가 한 일은 조화로운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선택된 디자인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이미지는 없었다. 이건,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깥을 향하여 나만 뽐내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낼 뿐이다.
마치 명품에 대한 욕구를 겉으로라도 따라하고 싶어서 짝퉁을 쓰게 되는 한심한 인식과 일맥상통한다.
디자인적인 요소를 평가하는데 그 분야에 전문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으로 배제되어 버린다면 전문가의 의견이 왜 필요한가? 이럴 때는 민주주의 역할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깥에 나가 도시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 미술 교육에 있다.
문화의 시대에 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미술 교육은 잘 그리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잘 보게 하는 일이다. 잘 보면 잘 그릴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문자 전달 중심의 환경에서 결과 위주로 가르치게 되니 미술 교육이 제대로 그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 때부터 많은 구호와 주장을 들어왔다. 현실에 대한 비평적 시각들이 권위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싸우다가 타협하거나 죽어가는 삶을 보아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하는 일은 그만큼 멀다. 나도 생각은 있으나 실천은 아직 멀기만 한 것이다. 세상을 향하여 칠하기 시작하는 나의 캔버스는 화랑 안이 아니라 교육과 출판에 있다는 생각을 다시 환기하지만 갈 길이 멀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기 전에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겠기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을 먼저 비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