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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대학교 인도비즈니스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카스트란 여러가지 설명이 있지만 한 마디로 직업의 분류라고 보면 된다. 책상 위를 닦는 사람과 사무실 바닥을 닦는 사람이 구분되고 빌딩 내부를 청소하는 사람과 외부를 청소하는 사람이 구분된다. 우리가 배운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개의 직업 구분이 아니고 수백, 수천의 직업이 구분된다. 즉 모든 직업이 전문 분야별로 분업화되어 하나의 카스트를 이룬다고 보면 된다.
인도는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남을 시키는 대리인 사회라 할 수 있다. 어떠한 일이든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찾아 일을 위임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지식이 없어서는 안 되는 분야를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도 해당 업무를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 올 때 까지 방치하고 기다린다.
직원에게 문서를 복사해 오라고 시켰는데 오랫동안 오지 않아 알아보면 복사를 담당하는 오피스보이 책상 위에 문서만 놓여 있다. 직원 입장에서는 자기 일이 아니고 오피스보이 업무이므로 오피스보이에게 전달만 하면 그만이다. 오피스 보이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그때까지 복사는 안 된다. 정원의 꽃이 다 시들어도 고장난 수도를 고치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정원사는 나 몰라라 한다. 왜냐하면 수도 고장은 자기 책임이 아니므로…
한 번은 중요한 손님이 오는 날 무역관 현관입구가 지저분하여 직원에게 청소를 하라고 하였다. 손님이 도착하기 5분전 나가보니 그대로였다. 나한테 지시를 받은 직원은 현관 밖을 청소하는 자를 찾으러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결국은 내가 비를 들고 청소를 하였다.
회사의 경영층들은 자신이 직접 전화를 하는 법이 없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전화거는 일을 비서에게 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인도처럼 전화 사정이 나빠서 몇 번씩 재시도 하고, 잘못 걸리기도 하고, 상대를 바꾸는데 몇 분씩 걸리는 곳에서는 직접 전화를 건다는 것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큰 낭비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경영층은 물론 부장급 과장급 인도인들도 자기는 놀면서도 바쁜 부하직원을 시켜 전화를 걸게 한다. 왜냐하면 전화를 거는 것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에는 당연히 많이 줄어들었다. 고위직 사람이 직접전화를 하지 않는 것은 상대편은 비서나 하급 직원이 전화를 받은 후 연결시켜 주므로 자신의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인 사장은 비즈니스 상담 때 재무담당, 기술담당, 변호사 등 여러 명을 참석시킨다. 각자의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관련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여 올바른 결론을 유도하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후에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는 나쁜 의도가 매우 강하다. 인도 기업은 가족, 친척끼리 구성되어서 분야별로 책임을 지고 그 중에 리더적인 사람이 사장을 맡는다. 따라서 의사 결정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상당히 존중하는데 이것이 책임회피로 이어지는 경향이 많아 결정이 한없이 지연된다.
관공서와 관련된 일은 거의 모든 분야가 대리인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선 법이나 규정이 너무 복잡하여 일반인들은 이를 거의 알 수 없으며 간단한 사항이라 해도 일종의 먹이 사슬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 일을 대행해 주는 자를 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심지어는 담당 공무원이 관련 법규를 잘 알지 못하여 그 일을 대행하는 자들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출 브로커가 대표적인 예인데 대개 컨설팅 회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이것을 한 번 살펴보자. 어느 기업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한다. 은행의 담당자가 보기에 대출하기에는 위험한 기업이다. 그런데 대출은 해주기로 기업과 은행 내부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다고 하자. 그러면 대출은 해주되 대출관련 책임자와 담당자는 사후 문제 발생 때 빠져 나갈 길이 필요하다. 이때 이들은 컨설팅사를 이용한다.
은행은 대출을 해 주어야 할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일을 대출 브로커인 컨설팅사에 수수료를 주고 의뢰한다. 즉 기업을 평가하는 일은 이 분야의 전문 업체인 컨설팅사에 맡기는 분업이 행해지는 것이다. 컨설팅사는 ‘대출 가능한 기업’이라는 보고서를 은행에 제출한다. 은행은 이를 근거로 대출을 해주는 것처럼 절차를 밟는다. 따라서 나중에 부실처리 되어도 관련 책임자와 담당자는 별 문제 없이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컨설팅 보고서라는 참 편리한 책임 회피용 면죄부가 있기 때문이다. 대리인을 내세워 자기는 책임을 회피하는 좋은 예다.
공장 내에서 분업을 살펴보자.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하는 팀, 차량까지 운반하는 팀, 차량에 적재하는 팀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하자. 이 중에서 차량까지 운반하는 팀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이 올 때 까지 공장의 전 과정이 정지된다. 우선 급한 대로 제조 팀이나 적재 팀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고방식이지만 인도에서는 잘 되지 않는다.
분업이 철저히 이루어지는 사회, 대리인이 나의 모든 일을 대행해 주는 사회 시스템, 이러한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책임 회피와 나태한 직업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과거 인도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