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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박미경 교수의 유럽 박물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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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미경 교수의 유럽 박물관 답사기]
거장이 주는 창조적 에너지- 이탈리아

양산시민신문 기자 321호 입력 2010/03/09 15:17 수정 2010.03.09 03:17



ⓒ 양산시민신문
2년 전 여름의 한 밤 중에 한니발이 걸어서 넘었다는 알프스를 나는 차를 타고 갔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비게이션은 밧줄이 말려있듯 꼬불꼬불 똬리를 튼 것 같은 모습의 길을 보여 주며 안내를 한다. 옆자리의 딸아이는 오른쪽 깊은 낭떠러지에 대하여 감탄 반 염려 반으로 묘사를 하고 뒷좌석의 아이들은 염려가 되는지 평소에는 듣지도 않는 찬송가 CD를 틀고 따라 부르면서 안전을 위해 기도를 하고 차 안을 마치 부흥회와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어두운데다 초저녁에 비도 부슬부슬 온 길을 바짝 긴장하여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향한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긴장이 풀어지면서 잠이 쏟아졌다. 길가 간이 휴게 공간에서 30분 정도 눈을 붙이고 스트레치라도 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서 본 하늘의 별은 크고 가까웠다. ‘밤하늘의 별과 같이 많다’는 표현이 실감나도록 오랜만에 많은 별을 보았다. 모두 같이 한참을 신나게 하늘을 보면서 감탄을 하다가 다시 길을 가는데 며칠간 잠을 못자고 하루 거의 1천킬로미터를 운전하며 강행군 한 후유증으로 눈이 건조하여 떠지지가 않았다. 오토그릴이라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 곳 운전자들이 하듯이 잘 다려진 한약보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한 입에 탁 털어 넣었더니 눈이 번쩍 떠졌다.

아침에 융프라우에 올라가면서 예약해 놓은 이탈리아 북부 작은 도시의 호텔을 찾아 들어간 시간은 거의 자정을 지나고 있었지만 방에 들어서면서 피로에 지친 눈이 다시 한 번 번쩍 떠졌다.
세계적인 체인의 호텔이어서 프랑스에서나 독일에서나 구조도 색상도 비슷한데 여기는 방의 색감이 달랐다. 같은 구조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 곳이어서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들어왔는데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방을 보고 이탈리아의 디자인이 프랑스보다 앞설 것 같다는 예측을 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이탈리아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어릴 적에 읽었던 이탈리아 배경의 소설들에는 가난하고 슬프고 어두운 인상이 주였었는데 그것이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주로 남부 이탈리아의 이야기란다. 

다음 날, 차 안에서 간단히 식사대용으로 먹을 음식과 물을 사기 위하여 식품점에 들렀다. 말고기를 파는 코너도 있었는데 우리가 간단히 먹으려고 찾던 깡통에 든 인스턴트 햄 종류는 없었다. 다양하고 신선한 과일과 야채들이 아주 많아서 과일을 사고 샐러드로 먹을 수 있는 야채도 골랐다. 나중에 들으니 이탈리아에서는 식당에서 냉동고기를 내어 놓으면 감옥행이라고 한다. 그만큼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일 것이다. 예전 로마 시대에 지은 수로를 통해서 나오는 수돗물을 지금도 마음 놓고 그대로 마실 수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탈리아가 점점 좋아질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고속도로 부근의 구릉과 마을들도 평화로워 보이고 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한 편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가 점점 더 좋아지고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한 달 이상 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몇 번 길을 물어보아야 한 적이 있었는데 경찰이든지 민간인이든지 인상 좋고 잘 생긴 이탈리아 남자들이 한국의 뚱뚱한 아줌마가 물어보는 길을 어쩜 그리도 성심성의껏 자세히 가르쳐 주는지 감동을 먹어서 한국 중년 여인들의 우울증은 이탈리아에 오면 저절로 치료되는 것 같았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 답하는 사람도 길을 잘 모른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예정대로 베로나에서 오페라를 듣는 것 말고는 모두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정하였다. 다음에 오면 물 속에 다 가라앉았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물의 도시 베니스와 갈릴레이가 과학 실험을 하였다는 피사를 들렀다. 르네상스 문화를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 메디치 가문의 도시 피렌체에서 우피치 박물관에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잠만 자고 다음 기회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보자고 하고 폼페이까지 갔다가 오니 로마 관광에는 딱 하루의 시간만 남아있었다. 늘 중요한 것에 정성을 더 들이기 위하여 뒤로 미루는 나의 습관이 여기서도 재현된 것이다. 사람의 습관은 바꾸기가 쉽지 않고 이렇게 여행하는 것에도 나타나는지. 다음을 기약하였다.

이번에는 스페인에서 비행기로 로마에 들어 왔다. 짜여 진 시간 내에 바티칸 시국의 박물관,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의 예술품과 로마 시내의 주요 건축물, 피사의 사탑을 주로 보고 그것에 대하여 각자의 전공의 관점에서 글을 써야 한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할 기회다. 며칠 동안 그림과 건축 그 시대의 역사 이야기에 푹 빠져서 보냈다. 오래 걸어서 발바닥에는 물집이 생기고 지쳤지만, 마음 속에는 창조적 에너지가 넘친다.

나에게 이탈리아는 시대를 뛰어 넘고 분야를 뛰어 넘는 창조적 에너지를 주는 곳 같다. 창조적 거장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만났고 그 외에 많은 노력하는 천재들을 만났다.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통찰이 생긴 것 같다.

미술작품 속의 원근법의 발달을 보면서 기하학의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할 계획이다. 또 스페인에서 본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수학에서 말하는 차원의 문제에 접근하고 현대 수학의 새로운 분야인 프랙탈에 대하여서도 이야기 할 것이다. 다빈치 상을 보면서 피보나치수열과 황금비에 대하여서도 이야기 하고 네덜란드에서 본 고흐의 그림으로 수학의 노말 벡터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제 여행은 끝났고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한 준비도 끝났다. 일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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