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어떻게 해야 좋은 세상이 될까?..
오피니언

[화요살롱]어떻게 해야 좋은 세상이 될까?

양산시민신문 기자 330호 입력 2010/05/11 14:20 수정 2010.05.11 02:20



↑↑ 신현경
영산대학교 영상시각디자인학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요즈음 K대학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에 대한 이론과 커리큐럼 개발로 강의를 나가고 있다. 이때 첫 단계로, 각자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미술 교육의 문제점을 읽어보도록 한다. 지금까지 미술 교육의 문제점은 기법 위주의 기능적인 수업에 있다고 학생들 대부분은 말한다. 매번 미술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화가 난다. 이미 수십년 간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시행착오를 고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 미술 교육은 50년대 미국 공립학교에서 시행된 기능 위주의 미술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인 후부터 7차례 개정을 거치면서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미국의 다양한 시도를 받아들이지만 현장에서 그 방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일반 교육 과정으로서의 미술 교육은 지금까지의 미술 교육과 같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 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 교육에서 오히려 시각 훈련을 방해하여 학생들의 잠재력 개발을 저해하고 있다. 그런데 미술을 전공한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한테도 새로운 미술 교육의 기초를 가르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하여 다양한 미술 교육방법론을 공부한다. 중간고사는 팀별 과제로, 한 팀마다 하나의 교육론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제기하고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관점을 찾는다. 기말 과제는 각자가 제기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찾은 교육론에 입각해서 개발한 커리큘럼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들이 개발한 대부분의 수업 안들이 초기에 자신이 지적했던 문제점을 반복하고 있는 학습 안들이다. 이와 같이 미술 교육의 역할이 결과 위주의 기능적인 표현 기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도 새로운 교육론을 받아들여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수업안의 목표가 시각 훈련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지하며 그 안을 수정한다. 그런데 미술 교사들도 미술 시수가 줄어 한문이나 다른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미술 교사가 되기 위하여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대학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다. 지난주 학생들한테 들은 바로는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지도 교수가 학생한테 장학금을 주고는 도로 받아내 그 학생이 법원에 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단다. 정부에서 단속을 해도 이러한 행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지도교수의 도움이 필요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면서 산다. 그러니 속으로는 억울하면서도 공식적 표현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교수는 그림도 잘 팔고 유명세가 있는 모양이었다.

교수들의 윤리와 도덕이 바닥인 상태에 건강한 비평 문화는 부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림을 제멋대로 그려내도 잘 팔리기만 하면 좋은 작가가 되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도 교수 노릇을 한다. 처음 임용되면서 아는 미술 평론가가 교수가 되면 ‘작품이 안좋아진다’는 말을 걱정스럽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시간이 모자라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교수가 되면서 학생들과의 관계가 상하 구조에 익숙해져 자유로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굉장한 욕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교수가 가진 게 없는 게, 그림에서 유명세가 없는 게 오히려 자랑이 되겠다.

어제 수업에서는 교육을 맡고 있는 대학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이야기도 들었다. 대학원생들은 이수해야 할 과목으로 교생 실습 외에도 교육 봉사 60시간 멘토링 수업을 해야 한다. 미술 교육을 전공한 학생들이 고등학교 방과 후 영어나 수학 시간에 들어가서 보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미술 교육을 전공해도 방과 후 수업이 입시를 위한 보충 수업이기 때문이란다. 이런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불만이고 이를 수행해야 하는 학교 측에서도 불만이란다. 대학원생들은 고등학교와 교육부에도 전화해 보았지만 어느 학교냐 이름이 무어냐고 따지기만 해서 혹 학교나 자신한테 불이익이 올까봐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도 기가 막히는데 대학의 말도 안되는 요식 행위 속에서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만 하니 아무리 학생들이 최근의 미술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방법을 배우면 무엇하는가? 미술 교육에서 옳고 그름을 볼 수 있는 눈, 그름을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표현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소리쳐 보았자 그들의 무기력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기 힘든 시각적 능력으로 문제를 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해결할 수 있는 그들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발휘할 자리가 없다.

이렇게 되니 학생들과 연결해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적 취지가 간 데 없이 역효과만 낳고 있다. 사실 어디에나 좋은 제도는 있어도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미술 교육을 전공한 대학원생들이 고등학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선배로서 멘토링을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인간들이 하는 일이라 교수들의 인성에 대하여는 개인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하더라도 이번에는 대학에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기만 하면 고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다 같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미술 교육이 제대로 확립되어 개인의 행복과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으로 교수의 역할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한 발자욱의 시작을 위하여 이는 고쳐져야만 한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