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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초대시]서재에서
오피니언

[초대시]서재에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0/06/15 10:25 수정 2010.06.15 10:25




 
↑↑ 이미정
삽량문학회
사무국장
ⓒ 양산시민신문 
잠깐 동안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연다
햇살보다 바람이 먼저 뺨을 친다
낱권으로 꽂혀진 책들이 횡으로 일어서고
전집으로 흩어진 열을 맞추고 있다
간발의 소란스러움이 걷히고
오래된 습관처럼 빈 벽에 등을 기댄 책꽂이
책과 책 사이 바람이 들고 나면
빈틈마다 햇살이 가득한 한낮의 서재는 단정해진다
밑줄 그어놓은 문장들이 접혀진 채로
낡은 지문들 사이로 유영하는 책 한 권을 꺼내
눅눅한 시간을 털어낸다
겨울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일기
마지막 페이지에 또 내일을 쓰고 있다





■ 시평
 
창문에 커튼을 드리우면서 잠시 외부와 차단된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면 바깥이라는 세계가 성큼 들어선다. 닫힌 공간에서 ‘문’은 소통과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이다. 건반처럼 즐비한 책들도 시인의 손 끝에 따라 펼쳐지고 닫힌다. 책은 품을 열고 재빨리 밑줄을 치고 흩어진 열을 맞춘다. 낡은 지문이 찍힌 서재는 기억을 쌓아두는 곳, 시인은 서재에서 ‘생각’을 낳고 ‘시’를 낳는다. 빈 벽에 등을 기댄 오래된 책꽂이도 시인에게는 세상과 교신하는 ‘통로’일 것이다. 시인은 책꽂이에 책을 꽂듯 단정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을 꿈꾼다.


- 마경덕
  시인,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발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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