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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수 영산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이번 학기엔 ‘중국 문화’ 수업을 수강생 25명 전원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한 것이 특히 보람이 있었다. 문화란 것이 원래 손에 잡히듯 선명한 물건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애매하지만, 요령부득하게라도 정리정돈을 해 보는 노력 자체가 의미있는 공부다. 이 대목에선 학기 중 다루었던 아홉 테마 중 넷을 간단히 언급해 본다.
중국 문화의 첫 번째 코드는 역시 보(報)다. 보란 갚는다는 뜻인데, 바로 은혜 갚음과 원수 갚음이다. 보는 중국인들의 사람됨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기준으로 이 도리를 지키지 못하면 사람 대우를 못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강호(江湖)의 질서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이기도 한데, 강호 세계를 무대로 하는 무협지의 영원한 테마가 곧 갚음이다.
중국에는 ‘10년 안에 복수하면 사내 대장부다’라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원수를 갚기 위해 오랜 기간 원수의 휘하에서 신임 받으며 때를 기다리다가 결국 복수한 예는 부지기수다. 은혜 갚음은 더 하다. 한신의 경우 어려운 시절 유방이 자신을 먹여주고 옷을 벗어 덮어주었던 은혜 때문에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다. 이렇듯 보는 중국인들의 인간 관계를 규정하는 기본 규범이다. 한국인들이 뒤끝 없이 쌈박한 것을 선호한다면 중국인들은 확실히 뒤끝이 있고 끈끈한 편이다.
두 번째 문화 코드는 천장지구(天長地久)다. 천장지구란 오래되고 두터운 하늘과 땅 같은 세월 즉 변하지 않는 긴 시간을 의미한다. 변하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는 이유로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전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천장지구는 중국인들의 넉넉한 시간 개념을 보여주는 용어인데,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에서 보듯 비록 당대에 이루지 못한다하더라도 뜻한 바를 끝까지 추구하는 여유를 표현하고 있다.
1997년 7월, 홍콩의 주권을 되찾아 오면서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향후 50년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일국양제란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실시하고 있는 중국과 자유주의시장경제를 시행하고 있는 홍콩이 하나의 중국이란 기치 아래 각자의 제도를 유지 발전시켜 가다보면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가 더 지혜로운 답안을 마련하지 않겠는가하는 논리다. 누구든 당대에 눈에 띄는 업적을 내세우고 싶게 마련이고, 또한 중국 혁명가들도 조급하게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의 시간 개념은 느긋하다. 급하고 욱하는 성격과 느긋하게 버티는 성격이 다투면 급한 편이 백전백패한다. 욱하는 한국인과 버틸 줄 아는 중국인들의 경쟁이 어떨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세 번째 문화 코드는 전능통신(錢能通神)이다. 돈이면 귀신도 산다는 뜻으로, 중국인들의 돈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보여주는 용어다. 물론 중국인들이 돈을 만능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상식이다. 그래서 돈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가 아니라 아주 분명하고 정직한 태도를 갖는 것이다. 보상의 방법으로 돈처럼 확실한 것도 없다. 한국인들이 체면과 실리 사이에서 이중적 태도로 망설이는데 반해 중국인들은 돈에 관한한 분명하다.
네 번째 문화 코드는 주화삼분(酒話三分)이다. 중국인들은 아무리 취해도 마음의 얘기 내지 사실은 30% 정도 밖에 말 안한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의 삶의 태도를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는데, 산다는 것이 결국 먹고 마시고 남녀 간의 일이면 충분하다는 아주 현세적인 자세를 표현하는 용어다.
중국은 사실 먹고 마시는 문화가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음식을 주문하고 술을 선택하며 즐겁게 먹고 마시는 시간을 주도하는 것 자체가 바로 큰 내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중국인들은 또한 손님 접대의 달인들이다. 상을 뻐근하게 차려 요란하게 먹고 마신다. 술 마시는 놀이도 아주 발달되어 있다. 먹고 마실 때 보면 후스(胡適)가 지적했듯 중국인들은 확실히 시끄러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술이 지나쳐 실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인들이 술 실수에 관대하고 취중진언을 정으로 생각하는 데 반해 중국인들은 즐겁게 마시지만 주화삼분의 절도를 견지한다.
중국 문화는 한국 문화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다르다. 다름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 문화 공부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