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시한줄의 노트]교사의 기도..
사회

[시한줄의 노트]교사의 기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0/06/22 10:11 수정 2010.06.22 10:13



  오늘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은 눈부시고 활기 넘치는 아들딸들의 내일을 알게 하시고, 자연의 구석구석 아름다움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현명함을 그들에게 주소서.
  나의 사랑, 젊은 영혼들은 엄동설한 솜이불속의 환한 미소요, 정신을 정화시키는 맑은 공기요, 그들의 젊은 혈기는 나의 희망이요, 그들이 기거하는 곳이 나의 안식처요, 그들의 땀에 젖은 살 냄새는 내 불멸의 향기인 까닭에 나의 뼈와 살과 피를 기름으로 하여 영혼까지 활활 타서 그들의 영양되는 거름이 되게 하여 주소서.
  나에겐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남을 즐겁게 할 유머도, 남을 배고프지 않게 할 양식도, 그리고 부도, 남의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도, 부끄럽게 내세울 명예도 없습니다.
  오로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의지와 정직함을 말하며, 밝은 지혜와 건강한 신체를 가지도록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나의 이 바람과 나의 이 소망이 영원할 수 있도록 머리를 깨우쳐 주시고, 손과 발이 부지런하도록 도와주소서.
  이 어두운 밤에 작은 촛불 하나 태우며 이름 없는 교사의 기도가 아름다운 빛과 향기가 되게 하여 주소서.

정태일 시인
雅號는 수월(水月) ․ 양천(梁泉).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출생. 동아대 국어국문학 석사 졸업. 1993년 8월부터 경남외고 국어교사로 재직. 2004년『시인정신』으로 등단. 2009년 6월 타계. 유고시문집, 『정만 눈물처럼 쏟아놓고』(산지니, 2009)가 있다.


양천(梁泉) 정태일 시인은 경남외국어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시인으로, 2004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하여 2009년 6월 타계할 당시까지 민주적 교육과 인간다운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다 간 시인이다.

‘교사의 기도’는 입시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과 교사인 자신의 모습 등 교육현장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 시인의 진정한 교육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겪는 안타까움과 부끄러움, 서글픔 등을 ‘기도’로써 풀어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머리는 지성적인 힘, 가슴은 정서적인 힘, 손발은 신체적 힘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기술기능의 힘을 상징한다. 그는 이 세 가닥으로 새끼를 꼬는 데 가슴의 가닥을 제일 소중히 여겼고, 이를 키워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로 본 것 같다. 결국 교육의 본질을 사랑으로 본 것이다.

교육은 누구에게 내보이기 위한 것도 또 자기 자신의 출세나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닌, 그저 ‘작은 촛불 하나 태우는’ 일이라고 토로했던 시인. 명목만 있는 교사가 아니라 ‘나의 뼈와 살과 피를 기름으로 하여 영혼까지 활활/ 타서 그들의 영양되는 거름이’되겠다고 다짐했던 시인은 제자들과 함께, 제자들 사이에서 그들과 울고 웃다가 결국 한줌 거름으로 돌아갔다.

교사를 그저 직업으로만 삼고 있는, 교사답지 않은 교사들이 더 많은 세상, 진정한 교사로 살기를 희망하다가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시인이여!

몸소 ‘거름’되어 준 당신으로 인해 당신의 제자들은 이 땅 찬란한 꽃으로 피어 ‘아름다운 빛과 향기’ 뿜어내리니, 가신 그곳에서 부디 편안한 잠 주무시기를.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