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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철 양산대학 기업경영학과 교수 YSC 글로벌 경영자 아카데미 원장 | ||
ⓒ 양산시민신문 |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이를 부정하고 하와(이브)의 유혹에 빠져 범죄를 범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바로 인류 최초의 하나의 갈등상태를 말해 준다. 세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라고 갈등의 문제를 토로하게 된다. 파우스트가 “아! 내 가슴 속엔 두 개의 영혼이 있구나” 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내 안에 신적인 이상과 악마적인 욕망이 갈등관계에 있음을 실토함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갈등이 있고 갈등은 생애의 한 부분이어서 인간은 태어나서 무덤에 이르는 생애를 크고 작은, 이런 저런 형태의 갈등 속에서 영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인생)는 갈등의 역사”라고 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사람을 제외하면 인간의 생각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문제의 갈등이라고 하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갈등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갈등은 감정 갈등인데 이는 분노, 불신, 싫어함, 공포 등에서 초래된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에서 주된 갈등인 개인 간 갈등은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에 기반한 감정 갈등이 문제로 된다. 그 이외에도 행동 갈등, 역할 갈등 등도 부가적인 문제이기는 하다.
갈등이 없는 사람이 없듯이 갈등이 없는 집단(조직)도 없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대로 부부간의 관계에서나 혈연적 관계로 맺어진 가정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갈등 때문에 자살행위는 물론 타살행위를 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등이 없는 집단은 찾아볼 수 없다. 갈등이 있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있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 영역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갈등은 좋은 것인가? 아니면 나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논란의 결론은 ‘갈등 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 중성적인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에 서있는 현대적 갈등론은 “지나치게 많은(높은) 갈등은 줄여(해소)야 하고, 지나치게 없는(낮은) 갈등은 자극하여 적정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갈등관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현대적 갈등론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많은 갈등을 줄여서 적정수준으로 이르게 하는 일이 1차적인 과제이고, 더 나아가 너무 적은 갈등은 자극을 주어 적정수준에 이르게 하는 일이 2차적인 과제가 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성공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이처럼 갈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사회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한 모습(현상)이므로 갈등의 적절한 관리는 인간관계의 형성 유지를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된다.
눈은 왜 두 개일까? 장단기 일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눈은 왜 신체 맨 위에 있을까? 멀리 넓게 보라는 것이다. 지도자를 정상이라고 한다. 그것은 산 정상에 올라 멀리 넓게 보라는 뜻이다. 지도자는 ‘더 낮은 자세’보다 ‘제일 낮은 자세’로 또한 말보다 경청이다. 리더(Leader)의 첫 자 L은 경청(Listen)의 이니셜이 아닌가. 소통보다 경청이 앞선다. “나를 따르라” 보다 “여러분을 따르겠다”고 하라. 그것은 미국 AT&T의 로버트 그린리프가 주창한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도 통하는 사상이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조직도도 역삼각형으로 그려야 된다. 맨 위에 고객이 있고 다음에 종업원, 맨 밑에 사장이 위치하는 역삼각형이 현대의 조직도다. 또 현대의 CEO는 도덕적 CEO이어야 한다. 그래야 종업원, 주주, 채권자, 소비자, 사회를 만족시킬 수 있다.
지난 6월 뜨거웠던 지방선거로 인한 갈등과 흩어진 마음을 한데 모아 경청과 소통으로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리더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