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음식 선택의 주요 화두는 ‘값 싸고, 양 많게’였다. 문제는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가 ‘단가 줄이기’가 됐다는 것. 음식 본연의 목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식재료가 쏟아졌다. 배는 채울 수 있었지만 영양은 부족한 음식이 범람한다. 그래도 단가가 맞다면 면죄부를 받았다.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분위기는 이내 납 꽃게, 쓰레기 만두, 농약 참기름과 같은 몇 차례 음식파동으로 직격탄을 맞는다. 음식이 사람을 먹는 이상한 상황에 소비자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에 들어서며 점차 거세진 참살이 운동도 ‘질 좋은’ 음식 찾기를 부추겼다.
그런 바람을 타고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운동(Local Food)’이 떠올랐다. 소비자들도 믿음을 가지고 이웃이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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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했던
아산 푸른들 영농조합
2000년 1월 아산 푸른들 영농조합이 개최한 지역농업선포식에 초대된 지역 인사 대부분은 고개를 외로 꼬았다. 19명의 농부가 다 합해봐야 18만여㎡가 고작인 땅을 가지고선 지역농업에 대한 미래상을 제시하겠노라고 어려운 걸음을 나섰으니 말이다. 어떤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자는 무리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렇게 십년이 훌쩍 지났다.
2010년 6월 현재 총 회원 수 338명, 수도작을 위한 344만여㎡의 채소 등을 위한 70만 여㎡의 땅에 자라나고 있는 품목 수만 해도 벼 등 55가지이다. 매출액으로만 비교해 봐도 초기에 비해 70배 이상이 성장했다. 커진 것은 비단 덩치만이 아니었다. 현재 푸른들이 유기농법으로 운영 중인 대지 비율은 80%로 나머지도 유기전환기와 무농약 방식이다. 이러한 친환경재배 방식은 푸른들의 질적인 성장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숱한 실패 밑거름으로
로컬푸드 꽃을 피우다
푸른들영농조합의 두드러진 성장을 가능케한 원동력은 생산, 유통ㆍ가공, 그리고 소비 조직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자를 보호하는 방식은 생산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보듬어줬다.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힘으로 작용했다.
생산자, 즉 농민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푸른들영농조합 이호열 대표이사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철학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1975년부터 유기농업을 시작하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실패는 중심을 찾게 했다. “생산자가 가난해진다면 결국 좋은 농사도 좋은 작물도 없다. 그런게 없다면 결국 신뢰를 얻을 수도 없다”고 말이다.
학교급식에 유기농쌀 공급
푸른들이 지역농업선포식을 가졌던 2000년 초반, 국내에서는 ‘참살이 운동’열풍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움직임이 커졌다. 급증하는 수요에 비해 친환경 작물의 공급처는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지력을 가꿔온 푸른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이에 힘입어 2003년 푸른들 영농조합 식품 가공공장 설립, 2005년 아산시 자원순환형 클러스터 사업선정, 2007년 친환경종합지원센터 완공, 2008년 유기축산 시행 등의 발전의 일로를 걷게 된다.
그런 와중 고민이 생겼다. ‘정작 생산자인 농민의 자녀들은 유기농 쌀을 못 먹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송악지역에 위치한 작은 학교에 제안을 한다. 70%의 쌀값을 조합 쪽에서 부담할테니 쌀만이라도 친환경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떠냐고 말이다.
좋은 쌀로 급식을 한다는 소문이 돌자 다른 학교에서도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푸른들 입장에서도 모든 학교에 공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산 지역의 학부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기축산 확대 계획
최종목표 상생을 향해
학부모들이 움직이자 급식조례제정은 급물살을 탔다. 결국 아산 전 지역의 60여 학교에 유기농쌀을 공급으로 이어졌다. 1년간 80㎏들이 5~6천포대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런 쾌거가 가능했던 것은 시민들의 ‘의지’와 충분한 공급물량을 확보해둔 덕이다. 물론 시작일 뿐이었다. 지금은 쌀뿐이지만 친환경급식 시범학교 시행을 시작으로 모든 반찬이 믿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푸른들은 현재 유기축산도 병행하고 있다. 지금 재배하고 있는 유기농 벼, 콩, 채소 등은 소의 깨끗한 여물이 된다. 푸른들은 그런 건강한 밥상의 시작이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상생의 시작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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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아산친환경지역농업 크러스터 회장 ·푸른들영농조합법인 이호열 대표이사
“이윤 아닌 상생이 불가능을 현실로”
-친환경농법을 시작한 것이 1975년이라고 들었다. 농약, 화학비료 등 증산정책이 주요 농업정책이던 당시를 생각하면 반대로 간 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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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무상급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려할 점은 무엇이겠나?
가장 필요한 것은 비용보다는 의지다. 단 준비 없는 의지로는 어렵다. 아산의 경우 유기농법이 뿌리 내린지 제법 됐고 기반이 풍부했기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의 경우 공급물량에 대한 분석이 중요할 것이다.
-향후 로컬푸드에 대한 과제는?
지산지소라는 것이 좋은 의도이지만 단어자체에 집착하다보면 다른 지역의 좋은 작물을 마다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중요한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생산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상생’이다. 일례로 평택의 어린이집에 2~3만 원 어치의 작물을 배달한 적이 있다. 이윤만 생각한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일이다. 다같이 잘산다. 그래서 미래를 만든다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