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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경 영산대학교 영상시각디자인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일이 생겨 화요일인 10일에 대회장을 찾은 나는 북경대학 제2교학관 정문에서 요원들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대회 하루 전날 등록을 하지 않아 회원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식 언어인 영어로 말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겨우 확인을 받아 통과하니 이번에는 100불인 등록비를 위안화로 달라고 한다. 미화로 준비해 왔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지갑을 털어 위안화로 납부했다. 달러화는 값이 자꾸 내려가는 반면 중국 위안화는 계속 오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 유학할 때, 중국학생들과의 차사고 때문에 기막힌 일을 당했던 기억이 있어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중국인들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이렇게 시작한 미학 대회는 누구를 만나도 불만 소리가 나왔다. 사이버 상으로 질문을 해도 답장 메일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발표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온 학자들도 있었다. 엄청난 규모였지만 진행마저 엉망이어서 큰 세미나실을 제외하고 중국말을 번역조차 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하였다. 중화사상의 자기중심주의가 이 정도면 뻔뻔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부대행사로서의 전시와 무용 공연도 참가자들에게 그다지 좋은 감응을 준 것 같지 않았다. 공연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감탄이나 즐거움이 없었다. 전시회는 제목이 ‘The Diversity of Art’였는데 Better Life Art Club이라는 단체의 작가들의 작품을 진열해 놓았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선정된 듯 하였다. 그래도 양주팔괴 중에 한 화가가 그린 연잎 한 획을 친 그림으로 디자인된 가방과 티셔츠는 그들의 대담한 자존심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기는 했다. 또한 시내의 거대한 빌딩 숲과 풍성한 음식들, 시간 내어 들렀던 자금성은 규모가 장대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경극도 규모야 대단하였지만 식상한 주제들과 영화 패왕별희에서 보았던 이미지가 참 잘 재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정도였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고 관광했던 몇 가지 경험은 지금까지의 선입관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에 대한 ‘다름’으로 이해를 받아들이는 경험이었다.
황제의 식구들만 즐겼다던 원명원 정원에서 연꽃 축제가 있다 하여 가보았다. 그곳은 과연 동양화에서 본 연꽃들이 살아있었다. 하나하나 선명하게 피어나는 연꽃들과 생생하게 건강한 연잎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버드나무숲을 배경으로 시원하고 풍성한 한 여름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나룻배를 타고 연꽃 사이를 노니다가 ‘툭 툭 툭’ 연잎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시작으로 소나기가 한바탕 멋있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엔 골동품 시장에 갔다. 몇 자루의 붓과 650위안짜리 제백석 화집을 50위안에 사들고 기분이 좋았다. 좋은 산수화를 보았지만 한푼도 안 깎아주길래 그냥 돌아섰더니 잡지도 않았다. 그 그림이 눈에 아른거렸다. 대부분 가짜라지만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연년유여(年年有餘, 매해마다 여유로우소서)라는 화제에 이 뜻을 담고 있는 메기 그림이 있는 족자도 115위안에 샀다. 한국 돈으로 이만원 정도이니 족자 표구 값도 안되지만 글 자체도 내게는 신선하고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 하이라이트는 798예술구에 들렀던 일이다. 시내에 인접해있는 공장지대인데 공장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작가들한테 작업장으로 거의 헐값에 분양하였다 한다. 작가들이 들어오고 화랑들이 들어서면서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다. 워낙 화랑이 많아 친구한테 들러야 할 곳을 물어 그 근처를 돌았다. 화려하게 장식한 소의 궁둥이, 입을 크게 벌려 합창하고 있는 중국 여성들, 희망의 길로 나아가는 다 무너진 기관차를 다시 세워 옮겨 놓는 등 자신들이 살고 있는 물질 만능의 중국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빈 공간의 미학을 평면 작업을 곁들여 포대와 밧줄을 주 소재로 한 설치, 현대 중국 화가나 아시아 작가들의 기획전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 시대를 꿰뚫어 보여주는 작품들이 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런 전시가 이렇게 많이 모여 있기도 힘들지만 관객들이 넘쳐나는 것이 신기했다.
3년 후에는 폴란드에서, 6년 후에는 한국에서 세계미학자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세계의 미학자들의 눈에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일까?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다 보여줄 수는 없다. 예술 문화를 ‘살아 있는’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중국 것들로 가득 차 버린 인사동 골목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다운 것들이 있어야 한다.
북경의 798예술구에서처럼 눈이 밝은 예술가들의 전시야말로 그 모습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시나 판매를 위한 작업보다는 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작품을 통하여 다양하게 펼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가치와 후원의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