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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호 영산대학교 일어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한일합방조약은 한국에서 병합조약, 병탄조약, 합방늑약, 경술국치조약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호칭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성격에 관한 해석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조약의 성립 과정에서 명확한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일한병합조약(日韓倂合條約)이라고 통칭되고 있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마사타케(寺內正毅)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합방조약을 체결했으며, 8월 29일에 조약을 공포 시행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편입되고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과거 합방조약이 일본제국 군대의 강압 아래에서 체결되었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일본 제국이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소요 등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타 지역에 주둔해 있던 일본 군대를 서울로 이동시키는 등, 삼엄한 경비 속에서 조약 체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강압적으로 체결된 조약이라고 해도 불법이나 합법이냐를 둘러싸고는 그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조약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견해로는 순종 황제의 최종 승인 절차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제기되고 있다. 병합을 최종적으로 알리는 조칙에 옥새는 찍혀 있지만 순종의 서명이 빠졌다는 점이다. 옥새의 경우 단순한 행정결제용 옥새인 칙명지보가 찍혀있고 국새가 찍혀있지 않다. 그리고 1907년 11월 이후 황제의 조칙문에 날인해 온 황제의 서명 ‘척(拓)’(순종의 이름)이 빠져 있다. 당시 순종은 강제병합에 직면해 전권 위원 위임장에는 국새를 찍고 서명했으나 마지막 비준절차에 해당하는 칙유서명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견해는 조약문 자체에 국제법상 형식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제국이 합방조약에 위임장, 조약문, 황제의 조칙 등 형식적인 문서들을 갖추고 있었던 점을 들어 형식과 절차에서 합법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합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 20세기 초의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이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약소국을 병합하고 통치했던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합법론자들은 합방조약에 앞서 일본이 외교권을 장악하고 한국을 보호국화 했던 1905년의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에 대해 고종 황제가 사실상 이를 승인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합방조약 체결 후 순종 황제도 사실상 조약을 승인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올해 5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국의 대표 지식인 109명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 105명은 도쿄 일본교육회관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병합이 원천 무효’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병합이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라고 선언하고 합방조약의 불법성과 무효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합방조약을 애초부터 불법 무효였다고 해석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해석이 옳다고 했으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독립운동이 불법운동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 이어지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1965년에 체결된 기본조약에는 ‘한일병합조약을 포함하여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합방조약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일본에 대해 조약의 불법성과 무효성을 주장하는 단호한 자세와 함께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거듭하지 않겠다는 역사반성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100년 전 무기력하게 국가의 운명을 완전히 일본제국에게 떠맡겼던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추궁과 병행하여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자생력을 키우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역사를 논하는 근본 이유다. 한반도의 지형상적 조건에서 볼 때 100년 전이나 오늘날 공통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며 생존을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국가 구성원 모두가 대외 관계에서 균형성을 유지하고 열강의 각축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와 감각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