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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한줄의 노트] 아는 여자..
사회

[시한줄의 노트] 아는 여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0/10/19 09:51 수정 2010.10.19 09:51




모르는 여자가 아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 몸에는 광화문 연가가 저장되어 있다
또 다른 모르는 여자는 구멍난 가슴을 부르는데
너무 솔직한 치마를 입고 있다 저쪽의
바람이 불어오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지하에서
노래가 끝날 무렵 누군가 술잔을
잘못 건드렸는지 세상 밖으로 넘어지고 별이 흔들린다
밤이 젖었네요 미안해요


유리잔에 금이 자라기 시작하고
바닥이 멀리 갈라져 나머지 시간과 부르던 노래와 가사까지
지진이다 하면서 땅속에 들어가 백 년 동안 묻혀 있다면
저들은 아는 여자가 될까


그곳에 가을이 오고 아는 여자가 떠난다 해도
밖에는 비가 내리기도 할 것인데


노래가 땅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어느 날 구조가 되어도 모르는 새처럼
우리는 지상의 노래를 다시 부르지 못할 것이다

최호일 시인
 1958년 충남 서천 출생. 2009년 《현대시학》신인상을 통해 등단. 현재 잡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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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
ⓒ 양산시민신문 
도시가 각박하고 고독한 것은 타인에 대한 경계 때문일 것입니다. 아는 사람도 믿지 못한다는 세상인데 하물며 모르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지상도 아닌 지하 노래방에서 이렇게 모르는 여자가 아는 노래를 부릅니다.

각기 다른 삶에서 1980년대를 공유한 사람이라면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간 연가를 기억하겠지요. 노래방에서 흥을 돋워 주는 도우미의 등장은 세월은 가고 노래만 남은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르는 여자와 모르는 여자가 ‘너무 솔직한 치마’를 입고 팀을 이루고, 자신들만 아는 남자들은 ‘술잔을 잘못 건드려’ 기억을 엎습니다.

밝은 햇살 아래 불렀던 청춘의 노래들이 그렇게 쓸쓸히 지하에서 순장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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