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사할린동포가 매정한 행정 처리로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하루아침에 생계급여가 끊겨 겨울철 난방은커녕 당장 끼니도 못 이을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10월 사할린동포 박귀복(67) 씨는 남편과 함께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와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국민임대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는 정부의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사업에 따른 것으로 박 씨 부부를 포함해 모두 80명의 동포가 정부와 대한적십자사 그리고 지자체의 도움으로 양산으로 오게 된 것.
하지만 지난해 9월 박 씨의 남편 박창길 씨가 지병으로 숨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 언어와 환경 모든 게 아직은 낯선 상황에서 남편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시간이 흐를수록 러시아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 못 이룬 날이 많았지만, 다시는 사할린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고국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박 씨에게 시에서 지원하는 생활급여가 하루아침에 지급 중단되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했다. 바로 남편의 사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할린동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동일한 수준인 2인 가구 기준 86만원가량의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 여기서 부부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하게 되면 생활급여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박 씨는 절반이 아닌 생활급여 자체를 받을 수 없다는 것. 2세 배우자는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올해 면사무소로부터 생계급여가 중단되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날아온 소식에 당장 먹고살 걱정이 앞선 것. 그 뿐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서 사할린동포에게 지급되는 재활용봉투와 이불 등의 최소한의 생활용품도 받을 수 없게 됐다. 현재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로부터 계속 거주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생계비 지급이 중단되면 당장 임대료와 관리비는 물론이고 난방비 마련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사할린동포영주귀국협회 박장녀 회장은 “배우자도 우리 동포인데 아직 국적 취득을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끊는다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느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여러 계통으로부터 민원을 접수한 시 당국이 백방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결과 해결책이 마련됐다. 보건복지부와 외교통상부에 질의한 결과, 2세 배우자에 대한 생계 지원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어낸 것이다.
시 관계자는 “사할린동포는 1년 이상 거주 요건만 충족되면 국적취득 자격이 되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1인 가구 기준의 생활급여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사할린동포의 처지를 헤아리고 행정이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로 대처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사업을 펼쳐온 대한적십자 경남지사 관계자는 “한 평생 타국에서 살다가 노년이 돼서야 고국을 찾은 사할린동포들에게 이번 일은 큰 상처가 되었다”며 “사할린동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