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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구운몽(九雲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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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 구운몽(九雲夢)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1/01/25 11:35 수정 2011.01.27 10:21




1.

도공이 헛간에서 톡톡톡 돌을 깎는 소리 들려옵니다 정이 돌 속에서 하/ 나의 눈을 파내다가 다른 하나의 눈으로 정을 옮깁니다 정이 돌 속에서/ 눈 하나를 꺼내는 소리 달까지 열렸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꿈꾸는 소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꿈꾸는 사람이 돌에 누/ 워 자다가,/ 저도 몰래 돌 위에 흘린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길에 누운 돌/ 로, 길이 스미는 사이라고 저 혼자 부르기도 합니다// 물속에 어두운 체온을 흩뿌뿌려놓고 가는 둥근고기들의 저녁입니다 도/ 공이 돌을 깎아낼 때마다 돌에서 눈보라가 흘러나옵니다// 도공이 만들다 만 그녀의 무릎으로 초가의 빗물이 떨어집니다 무릎은/ 둥글어서 오래 걸렸습니다 바람이 병원에서 새소리보다 엷어지고 한기를/ 모은 나무들이/ 가......아........아.......같...이......이...../ 사......아.......아........알.......자........./ 정을 내려놓고 도공은 붉은 술을 끓이며 젖은 볏짚에 숨긴 새들의 심장/ 을 뜯어 먹습니다.


2.

밤비가 가장 늦게 사람의 눈을 만나면 그것은 가장 이른 눈(雪)이 됩니다/ 가장 늦게 공기로 돌아가시는 비가 가장 희미한 그늘로 땅에 스밉니다/ 가장 낮은 산에서 가장 늦게 알을 낳은 새들은 세월이었습니다// 돌이 된 그녀의 무릎에 도공은 머리를 베고 잠이 듭니다  문밖은 세월이/ 고 문안은 저토록 눈보라인데 삶은 꿈이 날아가 달아나지 않게 돌 하나/ 꿈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잠든 도공의 입 밖으로 돌가루가 조금씩 흘러 나옵니다// 사랑은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여백이어서 돌망치가 손에서 지금 툭 떨/ 어지는 것입니다

김경주 시인

1976년 전남 광주 출생.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 『기담』(2008), 산문집으로『패스포트』(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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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양산시민신문 
사랑은 마음의 동요상태입니다. 그 흔들림 속에서 촉발되는 정서적 감각, 그것은 타자에게 가 닿고자 하는 전일한 의식, 즉 그리움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움이 타자에게 가 닿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리하여 파생되는 것이 상처이지만 그래도 남과 여, 하늘과 땅이 합일을 이루는 순간이야말로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미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취생몽사라는 술을 통해 이루려 하고 있군요. 과거의 모든 고통스런 기억을 잊게 해준다는 술. 시인은 그것을 <꿈꾸는 소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꿈꾸는 사람이 돌에 누워 자다가 저도 몰래 돌 위에 흘린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조각하고 <돌이 된 그녀의 무릎을 베고>잠든 도공의 꿈. <문 밖은 세월이고 문안은 저토록 눈보라인데 삶은 꿈이 날아가 달아나지 않게 돌 하나 꿈에 올려놓는 일입니다>라는 것은 취생몽사의 취기처럼 삶과 죽음,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물렁해지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같......이......이......사......아......아......알......자......>라는 메아리 같은 소리만이 남는 것은 화자의 합일을 염원하는 소망과 그 아스라한 자아의 소멸에서 비로소 사랑이 발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이런 상상이 한낱 허무한 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시인이 구운몽(九雲夢)에 취하는 것은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허물고 소멸 속에서 합일을 지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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