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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반지하 생활자의 아이 - 담장 밑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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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줄의 노트]반지하 생활자의 아이 - 담장 밑의 아이들 1

양산시민신문 기자 366호 입력 2011/02/08 10:37 수정 2011.02.08 10:33




반지하, 아침은 늘 반쯤만 찾아왔다
반쯤 투명한 햇살이 창턱을 반만 넘어들고, 창가의 제라늄이 반만 꽃잎을 벌리는 아침, 반쯤 벌어진 꽃잎 사이로 고물장수의 발만 보였다. 아침밥을 반도 먹기 전에 덫에 걸린 쥐새끼가 반쯤 열린 부엌문 뒤에서 단발마의 비명을 흘리는 아침의 연속이었다.
반지하의 시계는 언제나 반 박자씩 늦게 갔고, 주인집의 시계는 반 박자씩 앞서 갔다. 시계바늘과 시계바늘이 만든 공터에서 반지하의 아이가 반쯤 졸다 반쯤 깨는 사이 저무는 반나절, 누렇게 뜬 어느 봄날


어느덧
반지하에도 밤이
밤만은 온전히
찾아오곤 했다. 반쯤 흐릿한
형광등을 켜도 바퀴벌레가
도망가지 않는 방이었다.






윤지영 시인(문학평론가)

197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국문과,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현재 서강대, 숙명여대, 협성대, 서울산업대 등 출강. 계간문예 『다층』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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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양산시민신문 
흔히 현대를 인간 소외의 시대라고 합니다. 근대문명은 우리 삶에 편리함을 제공하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도구화, 관계의 단절,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등 수많은 부조리를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은 이 사회 속에서 주체가 아니라 타자로 전락한 채 건강한 생명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는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반(半)’이라는 어휘에 주목하고 있군요.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반만 충족되어 있고 나머지 반은 결핍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그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반 밖에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 심지어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 그리고 잠까지도. 그러나 밤만은 공평하게 내리는 역설적 상황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어둠을 밝히려고 해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삶, 그것은 어떤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궁핍을 드러내는 것이며, 실존적 결핍의 현현(顯顯)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 결핍을 사회적 결핍의 문제로 확산하여 보여주는 이 시는 현대인의 소통 단절과 그로 인한 슬픔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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