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 섭섭하지 않게 /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 손목에 달아놓고 / 아주 춥지는 않게 /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 군산에 가서 / 검색이 심하게 / 곰소쯤에 가서 /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 잠시 정신을 잃고 /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 손목시계 부서질 때 /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 살을 말리게 해다오. /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다오.
황동규 시인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 동대학원 졸업.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어떤 개인날』 『풍장』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등 다수.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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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 양산시민신문 |
일반적으로 죽음은 삶의 종료라는 부정적인 면모로 다가오지만, 이 시는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긍정적 인식을 보여주는군요. 시적 자아는 풍장을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여 자신이 죽을 경우 풍장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다오’라는 진술에서 보듯, 시인은 죽음을 슬픔이나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 시에서 ‘바람’은 일체의 사물을 소멸시켜 자연의 일부로 되돌리는 생명의 순환원리를 상징합니다. 죽음을 지향함으로써 새로운 탄생의 여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바람과 죽음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일상의 고달픔과 질곡을 벗어나 영혼의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성취하고 있는 이 시는, 현실적 시공간을 초탈한 초월적 세계로 귀환하려는 의지가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