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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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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상배가 안내하는 세계 6대륙 최고봉]“하쿠나마타타 킬리만자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1/02/22 13:56 수정 2011.02.22 02:08
①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조용필의 노래로 많이 알려진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탄자니아령으로 적도에서 남쪽으로 약 330km 지점인 케냐와의 국경 부근에 위치한 세계 최대·최고의 휴화산이다.

산의 크기는 동서로 약 80km에 달하며 그 가운데 키보는 분화구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최고봉은 해발 5천895m의 우후르 피크(Uhure Peak)다. 적도 부근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萬年雪)에 덮여 있어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또는 ‘위대한 산'이라는 뜻이다. 1889년에 독일의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 Mayer)와 오스트리아 등반가 프르트쉘러(Purtscheller)가 처음으로 키보 봉 등정에 성공하며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킬리만자로는 적도 남쪽에 위치해 계절이 우리나라와 정반대이다. 3월말에서 6월초까지가 본 우기, 10월말에서 1월초에 짧은 우기가 한 번 더 있어, 트레킹은 1〜2월과 6월 말〜10월 중순까지의 건조기가 시즌이다. 한국과는 달리 7, 8월이 가장 기온이 낮다. 3월 초순에서 5월 중순 사이의 우기에는 두터운 구름이 층을 이루어 정상부에는 눈이 내리고 저지대에는 비가 내린다. 이 시기의 기온은 대체로 따뜻하나 6월말에서 7월 사이 건기에는 구름이 없고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 10월과 12월 사이의 짧은 우기에는 종종 천둥, 번개가 치다가 저녁이 되면 구름이 걷히며 날씨가 맑아진다.

등반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1월과 2월로 대체적으로 건조하고 따뜻하며 가끔 소나기가 내린다. 전체적으로는 연중 어느 때나 등반이 가능하지만 1~2월과 9월이 가장 적기이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고도에 따라서 대체로 3가지로 구별되는 기후대와 식생을 보인다.

이러한 3분법은 킬리만자로에서 다시 적용되어 입산신고소인 마랑구 게이트(1천980m)에서 만다라 산장(2천720m)까지는 원시림지대,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3천720m)까지는 관목지대, 호롬보 산장에서 키보 산장(4천750m)까지는 고산성 사막지대를 이룬다. 그리고 키보 산장부터는 그대로 우후루 봉으로 연결되는데 길리만스 포인트(5천681m)까지는 화산재로 이루어진 45〜50도의 경사지대며 길리만스 포인트에서 우후루 봉(5천985m)까지는 빙하로 덮인 용암지대이다.


케냐를 통해 탄자니아 모쉬로


검은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위해서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를 관문으로 하는 경우와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을 관문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케냐쪽을 관문으로 이용을 많이 하는 편이다. 등반 이후에 초원의 야생동물 사파리를 즐기기에는 그 쪽이 낫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나이로비까지는 1만728km로 비행시간만 해도 15시간 40분이나 걸린다.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국 열흘 전까지 황열병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부산세관 옆에 있는 검역소에서 미리 접종을 마쳤다.

추위가 극성을 부리는 2월의 첫날 밤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은 뒤 카타르항공에 탑승해 다음날 0시 35분 출발, 다섯 시간 후 도하에 도착했다. 연결 항공기로 갈아타고 나이로비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으로 점심때가 약간 지난 시간이다. “찬물이 솟는다”는 이름을 가진 나이로비, 나는 이번 킬리만자로 등반이 다섯 번째이다.

필자를 포함한 17명의 산꾼들은 나이로비에 도착해 사파리파크에서 휴식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국경지역인 나망가에 도착해 간단한 출입국 수속을 했다. 탄자니아로 들어가는 비자를 발급받는 수수료는 미화 50달러. 예약된 버스를 타고 아루샤를 거쳐 킬리만자로 등산을 위한 관문인 작은 도시 모쉬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세 시간 반 정도였다.


등반객 1인당 현지인 5명 고용해야


스프링랜스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다음 날 아침 짐정리를 하자니 수석 가이드가 다가와 개인 짐은 15kg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한다. 자국의 등산규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개인별로 초과되는 짐을 호텔에 보관시키고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킬리만자로 등반루트는 6개 코스가 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길은 마랑구 루트(일명 코카콜라 루트)다. 순수한 등반시간만 하산까지 5박6일이 걸린다.

탄자니아 당국이 정한 등산규정에 따르면 킬리만자로 등반을 위해서는 1인당 현지인 5명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이들은 등산 가이드와 포터, 요리사 등의 역할을 하는데 우리는 5명의 가이드를 고용했다.

마랑구 루트의 출발은 마랑구 게이트(해발 1천910m)에 있는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의 입산신고로 시작됐다. 파이팅을 외친 뒤 숲길을 4시간 반 정도 걸어 올라가니 해발 2천720m라고 적혀있는 만다라 산장이 나타났다. 푸른 초지 위에 아담하게 지어진 방갈로 같은 산장이다.

만다라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8시에 출발해 완만한 경사의 잘 다져진 흙길을 걸어 오후 4시 경 호롬보 산장(해발 3천780m)에 도착했다.

호롬보에서는 고소적응훈련이 필수적이다. 마웬지봉 옆에 있는 새들(해발 4천300m)까지  갔다오는 게 정석이다. 이틀 동안의 고소적응과정을 거치고 해발 4천750m의 키보 산장까지 올라가는데 길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고도차가 없어 보이는데 호롬보 산장과는 1천m가 넘는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마지막 산장이 키보 산장이다.


밤에 떠나야 일출보고 정상까지


킬리만자로 등반은 기술적인 면이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산장 사이의 1천m가 넘는 고도차를 극복하는게 중요하다. 아니나 다를까 키보 산장에 도착하니 몇몇 회원이 구토를 하고 두통을 호소하는 등 고소증을 겪는 것 같다. 자정에 출발을 해야 하기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도록 한다.

밤 10시반 쯤 일어나 출발을 서두른다. 헤드랜턴 불빛에 따뜻한 물과 간식을 챙겨 앞뒤가 어딘지 구별이 어려운 밤길을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나섰다. 3시간쯤 올랐을까. 또다시 고소증세가 찾아와 대원들이 힘들어한다. 거의 10시간 걸려서 해발 5천681m의 길리만스 포인트에 도착하니 동이 튼다. 인도양에서 솟아올라 구름위로 모습을 드러낸 붉은 태양에 넋을 잃고 빠져 있다가 다시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정상까지 남은 2백m를 오른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리길처럼 느껴진다. 무아지경으로 전진한다. 캠프를 나선 지 12시간 만인 오전 9시반 경 드디어 정상인 우후르 피크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휴화산답게 분화구가 어마어마하다. 한라산 백록담의 수십배 크기가 될 것 같다. 분화구 한편에는 엄청난 높이의 빙하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만년설인 이곳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20년안에 녹아 없어질 거라는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상에 서면 온통 구름 속이다. ‘구름 위의 산책’이라고 할까.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왜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번은 킬리만자로에 오르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지인들이 부르는 킬리만자로 노래는 니마네푸사나(최고 산이라는 뜻)와 하쿠나마타타(문제없다는 뜻)라고 하는 의미심장함이 담겨져 있다. 고산등반은 항상 무사등정과 무사귀환을 바라지만 누구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하산하는 길은 고통 그 자체였다. 대원들은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조심조심 경사를 따라 내려왔다.

호롬보 산장에서 1박한 뒤 마랑구 게이트에 내려오니 전원등정이라는 축하와 함께 등정확인서를 나누어준다. 그리고 함께했던 현지인들이 모여 “하쿠나마타타 킬리만자로”를 부르며 축하해 준다. ‘진정한 기쁨은 고통 뒤에 온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산악인의 영원한 로망,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걸까”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대목이다. 소설은 1952년 그레고리 펙, 에바 가드너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김희갑, 양인자 부부의 작곡과 작사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만들어져 조용필의 대표곡이 되었다. 언젠가 탄자니아 정부 요인이 방한하였을 때 조용필에게 감사패를 주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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