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좋은 친구를 통한 자기성숙
..
오피니언

[화요살롱]좋은 친구를 통한 자기성숙

양산시민신문 기자 369호 입력 2011/03/01 10:28 수정 2011.03.01 10:26



 
↑↑ 정성식
영산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 양산시민신문 
우리 일상생활의 주변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사람은 항상 안팎으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여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것은 아마 사람은 여전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상황으로부터 다양한 도전을 받으며 언제 어느 곳이라도 ‘선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에게는 이것과 저것 아니면 그것을 선택하는 삶의 양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선택의 주체는 결국 자기자신의 몫이다. 이것은 친구를 만나 사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잘 선택하여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한다. 문제는 어떠한 유형의 친구를 선택해서 사귀어야 하느냐는 데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신중함을 필요로 한다. 왜 그러한가? 친구는 자기 인격의 성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제 만물의 기운이 솟아나는 3월을 맞이하여 지난 겨울 계속된 차가운 바람과 때늦은 함박눈으로 얼어붙은 냉기가 서서히 풀리고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각 학교에서는 새 식구로 들어온 신입생들과 진급생들로 자못 설레는 분위기이다. 대부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지내온 친구들이 무슨 인연인지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서로 만나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자 한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배우며 화기발랄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저절로 가깝게 지내거나 소원해지는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흥미롭게 추구하거나 편안하게 여기는 방향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고 차이가 나거나 어긋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경우 그러한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친구를 사귀어도 대개 저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여 흔히 듣는 말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장단점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좋아해서 유익하거나 해로운 경우에도 이를 초월하고 서로의 말이 난초같이 향기럽기만 들리기 마련인가 보다.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합친 ‘인간(人間)’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사람은 서로의 사이나 관계를 벗어나 외로이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형성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로 이해하고 원활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친구로서 나와 너의 만남이 시작됨은 처음 관계형성을 의미하지만 이전에 맺어왔던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연속된 생활에 시간적 매듭을 정하고 이를 기점으로 이전의 관계를 재조정 하면서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들이 평소 자주 들어본 동양고전 가운데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책인 <논어(論語)>가 있다. 비교적 짤막한 대화를 주고받은 <논어>의 내용 가운데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에 관한 말이 있다. <논어> <계씨(季氏)>편에 보면, “유익한 친구가 셋이요, 해로운 친구가 셋이다. 친구가 정직하고 믿음직스러우며 학식이 많으면 유익하고, 친구가 편벽되고 아첨을 잘하며 말만 잘하면 해롭다”라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여 경고해 주는 정직한 친구와 자신도 진실해질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친구와 자신도 현명해질 수 있는 학식이 많은 친구는 좋은 유형의 친구이다. 그러나 행실이 경박하여 남에게 아부를 잘하거나 오만하고 분별없이 행동하거나 불량한 짓을 유혹하는 친구는 나쁜 유형의 친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마음이 어둡고 뜻이 얕아서 자기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좋은 친구는 멀리 하려 하지 않아도 날로 멀어지고, 나쁜 친구는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아도 날로 가까워지는 법이다. 어물어물하는 바람에 나쁜 버릇이 붙어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경우를 주의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는 경우에는 주위에 훌륭한 선생님이나 어른이 계시더라도 바로잡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배움’이라는 말은 먼저 깨달은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의 양을 늘려가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그 이치를 배워서 익히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대상을 알아가는 데에는 시간적 앞, 뒤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가 잘 알지 못하고 처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나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의 언행을 본받아 행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 들어와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고전과 양서들을 많이 접하면서 자신의 안목을 넓혀야 하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자주 우정은 순수해야 하고 또 아무런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사귀다 보면, 자기 계발에 있어서 어떤 친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자아실현이 훌륭하게 발현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현상으로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장래 바람직한 지성인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겸손해 하고 좋은 친구의 언행은 적극적으로 본받으며 나쁜 친구의 도리에 어긋난 지나친 언행은 경계하겠다는 자세로 전환하여 자기의 인격을 도야할 수 있도록 나날이 새롭게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친구를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키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그 관계가 소원한 것 같지만 사실은 관련되는 것이 지극히 가까운 관계와 다를 것이 없는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하자.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