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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강무근의 요리이야기]서양요리의 역사..
기획/특집

[강무근의 요리이야기]서양요리의 역사

양산시민신문 기자 370호 입력 2011/03/08 10:32 수정 2011.03.08 10:28




인류가 음식을 조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불을 발견하고부터다. 기술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조리 방법과 형태도 변화를 거듭하여 왔다. 오늘날의 음식문화는 단순한 먹거리 문화에서 보고, 느끼고, 즐기는 다양한 종합 예술적인 면으로 계속 발전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약선, 푸드스타일링 등 건강보양과 분위기연출 기법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필자는 지면을 통하여 가정에서 어린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와 피자, 이태리식 쌀요리 등 간편하게 주부들이 배워가며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의 양목표(재료들의 목록과 양)와 과정을 제공해 나갈 계획이다. 본격적인 소개에 앞서 먼저 서양요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다루고자 한다. 서양요리의 뿌리와 의미를 안다면 실제로 그 요리를 만들 때 느낌이 남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식재료 이용한 프랑스 요리


 
ⓒ 양산시민신문 
우리는 외국음식을 양식 혹은 서양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서양식이란 어느 나라 음식을 지칭하는 것일까? 대학에서도 “미국음식 아닌가요?” 라고 반문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물론 아니다.

현대에 와서 서양요리라 하면 보편적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요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프랑스 요리가 서양요리를 대표할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지형적으로 이태리, 독일, 스위스, 스페인과 인접하고 있어 쉽게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고 전 국토가 평야로 되어 있어 조리에 필요한 식재료, 버터, 유제품, 조리의 필수라 할 수 있는 포도주 등이 풍부하여 일찍이 요리가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다.

또 하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프랑스 국민의 요리에 대한 긍지와 애착이 유별났고 조리사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오늘의 프랑스 요리를 세계적 요리로 만들었다.

1550년 이태리 메디치 왕가의 카테리나 공주가 프랑스 앙리 2세에게 시집을 가면서 함께 데리고 간 궁중 조리사들에 의해서 이태리 요리가 프랑스에 전파되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조리사들은 이태리 조리사들로부터 예술적인 감각을 전수하고 프랑스의 뛰어난 품질의 포도주와 식재료를 이용해 17세기 말엽까지 고전요리를 통해서 세계에 널리 알렸다.

프랑스 요리의 또 다른 도약의 계기는 1847년 당대의 가장 위대한 조리장인 아구스트 에스코피에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에스코피에는 프랑스 황제인 웰헤름 2세로부터 요리의 제왕이라는 작위를 받았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니스에 있는 생가를 조리박물관으로 만들어 지금도 보존하고 있다.

그는 조리의 과학화를 주장하였으며 그전까지의 고전적 프랑스 요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주방 시스템의 창시자가 바로 그다. 현재의 음식 서빙 순서를 창안한 사람도 그였다. 오늘날 저명한 요리전문가나 연구가, 미식가, 요리책을 쓰는 사람 그리고 요리를 직접 만드는 조리사를 망라해 그가 만들어 낸 조리법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프랑스에 요리기술 전수한 이태리


오늘날 이태리 요리는 프랑스 요리의 수준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요리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태리 요리는 크게 나누어 공업이 발달한 밀라노 중심의 북부 요리와 해산물이 풍부한 나폴리 쪽의 남부 요리로 대별된다. 이태리는 지형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요리와 비슷한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태리 요리는 요리에 사용할 각각의 식재료의 특성에 대하여 잘 알고 적합하게 사용하여 요리하기 때문에 발전한 것이며 오늘날에도 이러한 전통은 지켜지고 있다. 이태리 요리는 일찌기 로마의 영향을 받아 발달했고 프랑스 요리의 발전 계기도 피렌체 출신의 이태리 조리사들로부터 전수를 받아 발달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생산되는 많은 향신료를 사용하여 그 풍미를 자랑하였다. 또한 1797년 붕괴된 베네치아의 베니스 항은 유럽의 관문역할을 하는 세계적인 무역항이었다. ‘모든 길은 베니스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베니스를 통하여 무역을 전개하면서 후추, 계피, 커피, 초코릿 등의 식재료의 국제무역을 선도하였으며 이러한 식품들은 빠르게 베니스 요리에 이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태리 요리를 연상하다 보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밀가루 음식인 파스타다. 하지만 이 파스타는 이태리 요리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북부 산악지역에서는 풍부한 밀이 재배되었지만 넓은 평야지역에서는 질 좋은 쌀이 많이 재배되어 리조또(Risitto)라고 하는 쌀 요리도 유명하다. 각종 해산물을 넣어 만든 해산물 리조또, 각종 치즈를 넣어 만든 치즈 리조또 등이 있다.

독일의 영향을 받아 전수된 소시지 제조기술과 훈제법은 세계적인 명성을 받고 있으며 특히 ‘쌀라미’라고 하는 건조된 소시지와 ‘파마햄’이라 칭하는 훈제햄은 세계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태리에는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라는 거대한 두 개의 큰 섬이 있다. 시칠리아하면 마피아를 연상하게 되지만 열대성 건조한 기후를 바탕으로 생산되는 건조된 오렌지, 밀감, 레몬 등은 이태리 요리의 오묘한 맛을 더해준다. 사르데냐 섬 내륙은 양을 기르는 목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태리 내륙 전체에 양고기를 공급하며 이태리 북부 추운지역에 양모를 공급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젖으로 만든 페코리노 치즈는 미식가들의 군침을 흘리게 한다. 양과 관련된 사르데냐 섬의 유래는 예부터 남자들은 전부 양을 방목하여 기르기 위해 평야지역에 나가 몇 달씩 집을 비우기 때문에 집안의 모든 일을 여자들이 해야 해 모계사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자들의 몇 달씩 먹을 양식을 미리 여자들이 챙겨야 했다. 때문에 사르데냐 섬에서는 여자들의 결혼 조건으로 빵 만드는 기술을 우선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곳 빵의 특징은 보존기간을 오래하기 위하여 수분을 제거한 건조한 빵으로 돌처럼 단단하여 그대로는 먹을 수 없고 먹기 전에 수프나 물에 끓여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과 식문화의 계승으로 오늘날 이태리 요리는 세계적인 요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퓨전의 원조 파스타
                             

ⓒ 양산시민신문


이태리어로 파스타(Pasta)란 밀가루를 사용하여 만든 모든 요리를 총칭하는 말이다. 밀가루 반죽이라는 의미의 인파스타텔리에서 따온 것으로 파스타의 요리방법은 수없이 많으며 파스타의 모양과 종류만 해도 150여가지 이상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퓨전이라는 말을 흔히 접하게 된다. 요리에서의 퓨전이란 국적을 불문하고 좋은 장점을 골라 맛과 풍미, 색감 등을 서로 조화되게 만들어낸 요리를 말한다. 퓨전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찍이 이태리의 파스타 요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파스타는 주식이 아닌 전채요리였으나 이를 주식으로 전환시키면서 이태리의 북부지역에서 나는 밀가루와 채소, 남부지역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 등을 조화롭게 개선하여 퓨전화 시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파스타 요리가 세계적으로 그 인기가 상승한 것은 격식에 억매이지 않으며 값이 저렴하고 식사시간을 단축 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정서와 알맞게 개선된 퓨전화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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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대접받은 파스타요리에 반해 파스타를 미국에 들여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이탈리아인들의 미국 이민이 급증하면서 그 영향으로 대량의 파스타를 수입하게 되면서 파스타요리의 세계화가 이루어졌다.

미국정부가 1970년대 후반 발표한 ‘비만 등의 문명화 질병에 대처하기 위한 연구’ 결과 이탈리아의 식생활이 모델이 되었는데, 이는 이탈리아가 곡물과 올리브유를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이후 파스타요리가 지중해식 다이어트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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