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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잠 속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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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 잠 속의 잠

양산시민신문 기자 373호 입력 2011/03/29 10:41 수정 2011.03.29 10:31




한밤중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몸의 깊숙한 곳이 패였다
내 잠도 한 방울씩 샜다


티브이는 행복한 오후를 저 혼자 노래하고
나는 죄수처럼 질질 끌고 다니던 잠을 게워낸다
게으른 하품 속으로 햇살들이 시옷자로 부서진다
어제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시시해져
길가 은행나무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고개를 내밀고 대화를 엿듣는 하오 네 시
모두 막혔어
그늘은 비상구야
나무의 목소리는 투명하고
그늘은 기다랗게 또 다른 수로를 내고 있다
갈라진 수로바닥의 잠 한 마리
그늘 속에 둥지를 틀고 뒤척인다
내 몸을 파먹고
텅 빈 몸 어느 돌 틈에 알을 낳은 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강을 거슬러 오른다



정선 (2006년 『작가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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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양산시민신문 
누구나 한 번쯤 막막하게 하루를 보낼 때 있을 것입니다. 정해진 일, 해야 할 일도 없이 무작정 희망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낼 때가. 이 시는 그런 나날 속에서 발견한 자아를 청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하릴 없이 막막한 잠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귀만은 열려 있어서 세상의 소리를 민감하게 듣고 있군요. 브레이크 밟는 사소한 소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제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시시해져 돌아눕게 만들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갈망하고 있는 그 무엇, 그것을 듣기 위해 ‘귀’는 무기력한 자아를 자꾸만 깨웁니다.

투명한 나무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따라가 수로의 바닥에서 발견한 ‘잠 한 마리’. 웅크리고 있던 생의 대반전인 꿈의 산란! 막힌 일상에서 비상구를 향해 거슬러 오르길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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