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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수 영산대학교 일어학과 교수 | ||
ⓒ 양산시민신문 |
환태평양화산대에 위치한 일본은 지진에 대비하는 여러 안전장치들을 마련해왔었고, 쓰나미(津波)라는 용어가 세계 여러나라에서 공식어으로 사용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일찍부터 쓰나미에 대한 많은 연구와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대책을 세워도 자연은 그러한 인간들의 사전대비를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 최근 100여년 간은 경험한 적이 없는 ‘진도 9.0’의 지진이 일본 동북지역 태평양연안을 강타한 것이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지금까지 일본이 투자한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재난에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난 1995년 고베대지진 때에도 그랬듯이 일본인들의 재난 후 질서와 치안(治安)에 대해서는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지진 역시 외신기자들이 하나같이 감탄을 하며, 일본국민의 대처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항상 놀라며, 어떠한 교육과 환경이 그러한 일본인을 만들어 내었는지 새삼 궁금해지고, 부럽게까지 느껴진다. 얼마 전 프랑스의 어느 언론은 만약 프랑스에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지금의 일본처럼 주민들이 묵묵히 구호물자를 기다리며, 질서를 지키고, 안정될 때까지 차분히 지내지는 못할 것이라 이야기 했다.
틀림없이 성난 군중으로 돌변해서 치안이 불안해지고, 폭동까지도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든다. 리나라는 비교적 자연재해가 적은 나라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큰 자연재해를 입곤 한다. 그런 상황의 뉴스보도를 보면 정부의 대응에 대해 많은 질타와, 많은 원망 등을 늘어놓는다. 이러한 보도내용들을 일본과 비교해 보면 매우 대조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정부의 대응의 문제가 더 있는지 국민의 참을성에 문제가 더 있는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일본과는 다른 것은 틀림없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 등의 유럽의 보도를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와 일본이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일본이 매우 독특한 것으로 생각된다. 러나 그것이 과연 단순히 일본인의 국민성 때문일까? 일본인들도 일본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자신의 안전과 의식주 문제에는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라이프 라인(Life line)을 위협받으면서도, 불만을 표출하는 단체행동의 자제라던가, 질서유지를 위한 개인적 노력 등은 어떤 특별한 교육이나, 강력한 제재가 있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질서를 지키고 정부가 제시하는 규칙에 따르는 것이 그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과 정부 사이에 강력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위기상황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자연재해를 입었을 때, 가장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것이 정부라는 생각이 들어야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질서를 지킬 것이고,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르며, 한 마음이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세계에는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른다. 경제적인 문제, 군사적인 문제, 그리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자연의 변화 등등. 이러한 상황들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 간의 확실하고도 강력한 신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먼저 나서야 한다거나, 국민이 포용력을 가지고 국가를 따라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최근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태, 특히 일본의 대지진을 볼 때, 어떠한 위기상황에도 대처 가능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 모두가 마음을 열고, 서로를 위하겠다는 마음으로 깊고 강력한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급변하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