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리(6천194m)는 북아메리카대륙의 최고봉이다. 알래스카 북서쪽 끝에 있으며 지질학적으로는 북태평양 화산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1974년 영국의 항해가 조지 벤쿠버가 쿡만에서 처음 이 산을 보았다고 알려져 있다. 1959년 1월 3일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알래스카에는 무려 3천 개의 강과 3백만 개의 호수 그리고 5천여 개의 빙하가 있다. 맥킨리는 앵커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210km 떨어진 데날리국립공원에 속해있다. 산의 두 봉우리 중 정상은 남쪽 봉우리며 약 70% 이상이 만년설로 덮여있다.
원주민들 사이에서 맥킨리는 ‘높은 곳’이라는 뜻의 ‘데날리’로 불리며, 러시아인에게는 ‘큰 산’이라는 뜻의 ‘볼샤야고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1800년대 말에는 탐광자인 프랭크 덴스모어의 이름을 따서 덴스모어봉이라 불렸다. 현재의 이름은 1896년 다른 탐광자인 윌리엄 A. 디키가 붙였는데, 그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윌리엄 매킨리를 기념한 것이다.
이 산은 북면이 5천m로 19km나 펼쳐져 있고, 남면은 3천m 표고차의 화강암이 카힐트나 빙하까지 드리워져 있다. 북위 63도, 북극에서 32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므로 추위가 심하고 기상이 불규칙하며, 낮이 약 20시간 지속되는 백야현상과 높은 위도로 인한 고소등반이 히말라야 지역보다 500〜900m 정도 높게 나타난다.
고상돈 숨진 악명높은 봉우리
맥킨리 등반은 히말라야에 비해 경비가 적게 들고, 접근이 용이하며, 다양한 등반루트를 통해 오를 수 있고, 행정처리가 수월해 많은 팀들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포터, 셰르파 없이 알파인스타일로 등반해야 하기 때문에 대원들 스스로가 모든 역할을 맡아야 하고 랜딩포인트에서 정상까지 약 4천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하는 등의 난점이 있기도 하다.
북미최고봉이라 부르는 맥킨리(6천194m)는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자 고상돈을 비롯해서 일본의 산악영웅 우에무라 나오미 등이 유명을 달리한 곳이다. 혹독한 추위와 강풍, 잦은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인해 사고발생률이 높아 악명 높은 봉우리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알래스카는 미국이 1867년 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가 러시아에 720만달러(한화 약 80억원)를 지불하고 사들인 곳이다. 당시에는 국민들로부터 ‘어리석은 거래’로 비난받았지만 지금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원의 보고가 되었고 아웃도어의 본고장이 되었다. 맥킨리 등반의 최적기는 5월에서 7월사이가 되는데 필자를 포함한 등반대는 지난 2008년 5월 7일 인천에서 타이베이를 경유해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와실라산장으로 이동했다. 와실라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쪽으로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강물이 합쳐진다는 뜻을 가진 탈키트였다.
등반수칙 안 지키면 바로 소환
탈키트에서 고상돈산악인의 추모비와 먼저 간 악우들을 참배하고 카고백을 정리하여 허드슨에어로 35분 비행후 랜딩포인트라 부르는 넓은 설원에 도착,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주변의 풍광은 만년설로 별천지나 다름없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맥킨리 등반에서 어려운 점은 극지방(북극에서 320km)인데다 쓰레기와 배설물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등반수칙을 지키지 않아 레인저(감시원)에 적발되면 바로 소환장을 발부받는다고 한다. 탈키트 레인저 사무실에서 등반에 대한 특별교육을 받고 플라스틱 변기통 3개를 받았다.
랜딩포인트에서 캠프1까지는 8.37km로 50kg이 넘는 무거운 짐을 배낭에 매거나 썰매에 싣고 산악스키로 올라가는데 자꾸만 썰매가 뒤집혀지는 바람에 힘들기 말할 수 없지만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러시아 산악인 아나톨리 부끄리프는 96년 에베레스트 대참사현장에서 탈출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산에 갈 때 남의 도움이 필요한 자는 산에 갈 자격이 없다”고 했다.
기상상태에 좌우되는 정상 등정
맥킨리 등반 캠프 사이트는 대부분 넓은 플라토 지역으로 크러스트(얼어붙음)가 잘 되어 있으나 변화무쌍한 기상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고소캠프가 하나둘씩 만들어 지면서 모터사이클언덕이라 부르는 바로 아래에 캠프3(3천400m)가 구축됐다. 캠프3까지는 산악스키로 등반을 했지만 이후로는 아마 힘들 것 같다.
짐수송을 위하여 산악스키를 캠프3에 보관시켜 놓고 모터사이클 언덕을 넘어 바람통로라 부르는 경사진 윈디코너를 지나가는데 추위와 강풍이 엄습해 온다. 몸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자세를 낮추어 윈디코너를 돌아가는데 썰매가 맘대로 굴러 떨어진다. 맥킨리시티 바로 아래에 짐을 눈 속에 파묻어 놓고 캠프3로 하산했다.
등반 5일째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내린다. 회오리성 눈보라로 사방천지가 삽시간에 암흑세계로 변한다. 텐트가 묻힐 정도로 폭설이 내려 수시로 눈을 치워야 하는 비상상황이다. 맥킨리등반의 성공여부는 기상정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레인저 캠프를 찾아가 매일 기상을 체크해 본다.
악전고투 끝에 맥킨리시티라 부르는 메디칼캠프(4천200m)에 도착했다. 보통 맥킨리 원정대는 이곳에서 약 7일 정도 머무르면서 정상도전에 나서는데 우린 4일 만에 정상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목표는 전 대원 등정이다. 헤드월(5천m)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진정한 등반기술은 생존하는 것
먹는 것도 고통이요, 잠자는 것도 고통이요, 배설하는 것도 고통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경사 65~70도 정도의 빙·설벽지대를 쥬마(등강기)로 헤드월 상단까지 힘겹게 오른다. 바로 코 앞 같은데 안부까지 올라서는데 4시간이 넘게 걸린다. 바람이 심한 암, 설벽지대를 곡예를 하듯 넘어서 캠프5라 부르는 맥킨리빌리지(5천200m)에 도착하니 몸상태가 최악이다. 이젠 정상 갈 일만 남은 셈이다. 힘든 몸으로 텐트를 구축하고 강풍을 막기 위해 눈 블록을 쌓았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다.
맥킨리 빌리지에서 침낭도 없이 고통의 밤을 보내고 알파미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캠프를 나섰다. 살벌하다는 데날리패스는 기상이 받쳐주어 다행히도 운좋게 지나갔다. 다시 경사진 언덕배기를 올라서 밋밋한 사면을 따라 오른다. 축구장 같은 풋트볼힐을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경사 50도의 툭 튀어 오른 데날리, 바로 맥킨리봉 정상이다. 진이 다 빠진 상태에서 봉우리에 올라서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소진된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제3의 힘에 의존해 오후 늦게 맥킨리 정상에 올랐다. 성취감도 잠시 접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마지막 캠프로 하산했다. 당초에 목표한대로 전원등정에 성공했다.
등반의 참다운 기술은 살아남는 데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하산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