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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 ||
ⓒ 양산시민신문 |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보기 위해서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오리지널 고릴라를 볼 수가 있습니다”라며 링컨을 욕되게 했다.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스프링필드가 링컨의 고향이었고 링컨의 생김새가 고릴라 같았기 때문에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내각을 조직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장관 자리에 바로 스탠톤을 임명하였다. 참모들이 링컨에게 어떻게 당신의 적을 그런 중요한 자리에 앉힐 수 있냐고 물었더니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그 사람이 적이 아니지 않소. 나는 적이 없어져서 좋고, 그가 나를 돕게 되었으니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 좋지 않소. 내가 이 사람을 용서하고 중요한 자리에 임명한 것으로 인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잃었단 말이오?”
복수는 복수하는 사람과 복수 당하는 사람 모두를 파멸시킨다. 그러나 용서는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한다. 복수를 해서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용서함으로 링컨은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독일 라벤스부룩 수용소 벽에 나치의 살인적인 만행을 겪은 누군가가 쓴 이런 글이 있다고 한다. “오 주님! 선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만 기억하지 마시고 악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도 기억하소서.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가한 고통 일체를 잊지는 마옵소서. 그 대신 이러한 고통 때문에 우리가 맺은 열매들, 우리의 교제, 서로에 대한 충성, 겸손, 용기, 관대함을 기억하소서. 이 같은 고난으로부터 성장한 마음의 위대함을 기억하소서. 핍박한 자들이 주님 앞에서 심판 받는 날, 우리가 맺은 모든 열매로 그들을 용서하소서”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광경을 망연자실 바라보아야 했던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한 그 사람은 나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었을까?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않은 그 사람은 아마 더 큰 평화를 누렸을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 주간에 운명하시며 기도하신 내용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여기서의 용서는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니다. 원수들로부터 받는 수치와 모욕이 없는 듯 내숭을 떠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할 상대편에게 보복을 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