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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본다는 것과 느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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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살롱]본다는 것과 느낀다는 것

양산시민신문 기자 376호 입력 2011/04/19 09:48 수정 2011.04.19 09:34



 
↑↑ 신현경
영산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 양산시민신문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본다는 한계를 가진다. 푸코는 자연적인 인식은 없으며 호프만에 의하면 시각은 구축된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은 3차원의 세계를 이차원의 이미지로 인식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없는 해석이 나오게 되어 각자가 쌓아온 이미지들로 구축된 자신만의 인식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인식에서 관심 있는 부분만 보고 관심이 없는 나머지는 생략된다. 다시 말해 관심을 주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관심의 정도에 따라 즉,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풍경을 다르게 본다.

한 사람이 보고 있는 사실에 객관성이 존재할까? 관심 없이 보는 것은 눈은 뜨고 있으나 보고 있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KTX를 타고가다 보게 된 TV 프로였다. 미국 대학의 어느 심리학자가 실험을 통하여 사람들이 한 곳에만 집중하면 다른 것은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보여준 화면이었다. 그 한 예로서 TV 첫 화면에서는 농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곳에 고릴라로 분장한 사람이 농구하는 사람들 사이를 통과한다. 시청자들은 고릴라인간을 볼 수 있지만 농구를 하던 사람은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한 채 농구만 하는 것이다. 참으로 믿지 못할 이상한 광경이었다.
또 하나의 실험은 지나가는 사람한테 길을 물어본다. 길을 가르쳐 주는 동안에 그 사이를 사람 둘이 큰 합판을 들고 지나가고 그 사이에 질문자가 바뀐다. 옷 색도 바뀌고 키 차이도 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20명 중 3명만 제외하고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의도적인 맹점(Intentional Blind      ness)이라 한다. 이러한 시각의 한계 안에서 자신만의 생각, 즉 편견으로 자리 잡게 되어 자기중심의 관점이 생기게 된다. 문제는 모두가 자신의 경험으로 구축되어온 다른 인식 안에서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편한 것만 보게 되고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면 타인의 관점은 틀린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방어하고 합리화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서로 비난하고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주변에서 항상 일어난다. 한 개인의 삶으로부터 크게 보면 이라크, 리비아 전쟁까지….

그러나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다. 또한 다양한 차이가 있다. 요즈음은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각 능력을 가지고 게임도 한다. ‘브레인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가장 정확하게, 빨리, 그리고 많이 보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개개인의 청각 능력에 차이가 있듯이(영어 뉴스를 듣고 있는 개인에 따라 이해하는 능력이 다르다) 시각 능력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각에서는 자신이 훈련 받지 못한 외국말은 아무리 들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정도 차이가 나지만 스스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시각의 경우 위험한 일은 자신이 본 것만이 확실하여 사실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본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장님이 코끼리 뒷다리를 만져보고 자신이 아는 것이 코끼리라고 생각하는 우와 같다. 사실 장님이나 마찬가지 상태이다.

나의 관점과 남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 즉 나의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여기에서 관점의 다름은 인정해야겠지만 보는 능력에는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차이가 있다. 정말로 잘 본다는 것은 사실 마음으로 보고 느낀다는 것이다.

2000년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자기 표현 워크샵인 ‘자아를 찾아가는 미술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엄마가 첫 시간에 참석했다가 ‘딸을 데리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엄마와 딸이 함께 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적응이 힘들어 몇 군데를 옮겨 다니고, 부모에 대한 반항도 심한 아이였다. ‘우뇌로 보고 그리기’ 시간이었다. 이는 쉽고 재미있게 그리는 표현을 돕기 위하여 형태를 중심으로 그림에 대한 부담을 없애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우뇌로 서로 보고 그리기’를 하기 위하여 엄마는 순수 윤곽소묘(그리는 손 안보고 그리기: 그리는 손은 안보고 그리는 대상만을 자세히 보고 천천히 그리는 것을 말한다)를 하고, 딸은 이런 엄마를 보고 그리기이다. 10분 정도 그리고 난 후 아이한테 느낌을 물어보니 ‘엄마가 많이 늙으셨어요’ 하는데 어머니께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신다. 이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를 마음으로 본 것이다.

다음 주에는 그 아이가 ‘친구를 데려오겠다’라고 하여 ‘그렇게 하라’고 했다. 친구는 붉은 색을 매우 파괴적으로 사용하는 아이였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친구 그림에서 붉은 부분을 태양으로 만들어 주며 둘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친구를 마음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둘이서 그림으로부터 대상에 대한 증오를 함께 공유하면서 객관화하고 통합해 가는 것을 보았다.

이 시간에는 ‘친구의 그림으로 서로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와의 관계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으며 말없이 그림 속에서 친구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도와주었다. 이렇게 우뇌로 보고 그리기는 언제나 보고는 있으나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보고 느끼게 한다. 어떻게 보는 방법을 넓힐 수 있는가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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