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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군사부(軍師父)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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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화요살롱]군사부(軍師父) 일체

양산시민신문 기자 380호 입력 2011/05/17 10:34 수정 2011.05.17 10:28



 
↑↑ 영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 양산시민신문 
아침 신문에서 세종대왕의 리더십이란 글을 보았다. 장남도 아닌 22살의 어린 세종이 신흥 국가인 조선의 4대 임금이 되었을 때 아버지 태종은 상왕으로서 군사권과 인사권을 쥐고 있었고, 망한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아직도 가진 신하들이 조정에 많이 있었다. 세종이 자신보다 연륜과 경륜이 훨씬 높고 호의적이지도 않은 신하들의 마음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몇 가지 장점 때문이라고 한다. ‘열린 귀’, 지적인 탁월함과 겸손, 신하들을 대할 때에 인간적으로 대하며 감성적 접근을 한 것, 상대방의 강점을 인식하여 최대한으로 활용한 것이 그것이다. 이런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었을 그의 재위 기간에 안정과 많은 발전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의 최대 업적은 우리글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지만, 그 외에 제도의 정비와, 경제적, 대외적, 문화적 발전과 과학적 발달 등이 그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듣는 귀’를 가진 세종은 묻고 경청하며, 결정하고 벼슬도 내리고 정책으로 시행하기도 하면서 노 대신들의 신뢰를 얻는다. ‘듣는 귀’란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구한 ‘듣는 마음’과도 같은 것이다. 역사상 위대하다 알려진 두 왕의 공통적인 자질이 ‘듣는 마음’인 것을 보면 이것이 리더에게 얼마나 중요한 자질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최선의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한 책임감 있는 마음이고,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자신이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다. 한편 책을 좋아하던 세종은 지식도 뛰어났는데, 정기적으로 세미나식의 국정회의인 경연을 하다 신하들의 무식이 드러나기라도 할라치면 ‘배우는 자들은 스스로 모른다고 낮추는 것이 옳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덮어주는 겸손을 보여 준다. 이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닌데 젊은 임금이 이러기는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나라의 중요한 행사장에서 실수를 한 관리에게는 다치지 않았는지를 먼저 묻고 실수를 하게 한 행사장의 구조를 고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 실수는 주변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실수였고 본인도 크게 놀라서 사죄하였다고 하는데, 그는 관습을 깨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정도만 되어도 사람의 존경과 마음을 얻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그것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람을 임용할 때에 그 자리의 핵심 자질과 함께 왜 그 신하가 그 자리에 최적임자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 주었다고 한다. 단순하게 일을 맡기는 명령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가슴에 불을 지펴 준 것이다. 그가 평소에 관심과 사랑으로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보니 일은 자연히 따라온 것이었다.

또한 단순히 자신의 말을 잘 듣거나 부리기 좋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적임자를 임용하였다. 어떤 신하에게는 ‘강직하고 정직한 자질을 타고 났다’고 하면서 어전회의에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집요하게 지적해서 바로 잡는 그 신하의 역할을 인정하고 ‘임금의 실수를 바로잡고 나라 풍속을 진작시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금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은 신하가 어찌 자신의 사명을 소홀히 하며, 임금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그런 임금이 어찌 맡긴 일에 대하여 시시콜콜히 간섭하며 신하가 자기 역량대로 일하는 것을 막겠는가. 가슴 뜨거운 전문가에게 온전히 신뢰하며 맡기니 각 분야의 부흥이 어찌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일의 진정한 위임으로 임금은 더 중요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종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럴 수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데 그에게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사람 자체로 인정해 주는 누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고난 속에서 긍정적인 성찰로 그것을 극복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넉넉함으로 그랬을까. 지금은 그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세종이란 사람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될 것은 분명하다. 우리도 세종 같은 리더를 만나고 싶다. 이것을 기대 하기는 하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리더가 되지 못 한다고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이런 리더가 없다고 한탄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도 세종 같은 리더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도 해 본다. 또한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세종과 같은 리더들을 키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휴식 시간에 동료 교수와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오늘날 교수는 부모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었다. 사랑으로 아이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보고 꿈을 갖도록 하고,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줄 뿐 아니라, 길을 가다보면 어려움은 반드시 있을 것이지만 학교와 학과의 울타리 안에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그 어려움은 또한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해주어야 한다고. 그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어떻게 도약할 것이며 어려움을 이겨낸 선배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도 계속 보여주어야 한다고.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두려워 할 때에 지속적인 관심으로 격려해 주어서 한 번의 경주를 승리한 경험을 갖게 해 주는 것이 부모나 스승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한 번 승리한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넘어져도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경험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임금과 스승과 부모의 은혜는 똑같다는 군사부일체는, 임금과 스승과 부모의 역할이 똑같다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한 사람이 자기의 탁월함으로 자긍심을 갖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가슴 뜨겁게 사명을 감당하고, 마음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고 또 그렇게 할 대상을 갖는 삶을 살도록 하는 역할.
스승의 날이 세종의 생일을 따라 5월 15일이 되었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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