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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구제역이 끝났다고 하지만 수백수천마리의 돼지를 잃은 농가들은 아직도 구제역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을 시작으로 4개월여간 전국을 뒤덮은 구제역 파동이 사실상 종료된 가운데 돼지 1천400여마리를 살처분한 상북면 외석리 서명제(64) 씨는 축산농 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제역이 끝났다지만 농장 출입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철저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농장소독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농장을 떠나지 않는다. 축산인들의 모임은 아예 가질 않고 외부 행사도 예전만큼 참석하기가 힘들다. 철창 없는 감옥생활을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가 없다. 구제역 공포가 서 씨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악몽
소주 없이는 잠 못 이루던 그 때
뉴스에서 구제역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서 씨는 무덤덤했다. 양산에서 30년 넘게 돼지를 키워왔지만 구제역은 딴 나라 얘기였다. 세월이 만들어준 농장운영의 노하우에다 농장청소와 소독작업에도 철저했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난 2월 12일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했다.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돼지가 구제역 의심증상을 보이더니 급기야 구제역 발생 농가라는 낙인이 찍혀 버린 것이다. 어미돼지 200마리를 포함해 1천400마리를 살처분했다. 1천400마리 모두 구제역이 걸렸던 게 아니라 대부분 예비적 살처분이라는 명목에 그저 같은 농장에서 키워졌다는 이유로 땅에 묻혔다.
서 씨는 “임신 중인 어미돼지를 살처분 할 때 집사람은 차마 볼 수가 없다며 농장을 뛰쳐나가 버렸죠. 저도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 소주 한 잔이라도 걸치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죠”라며 당시 상황을 잠시 회상하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양산지역은 지난 1월 29일 상북면 좌삼리 돼지농가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후 상북 외석ㆍ신전리, 하북 상감리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그렇게 두 달여간 구제역 바이러스가 양산을 뒤덮었다. 돼지는 물론 소와 염소를 포함해 11농가에서 모두 1만22마리가 살처분되고 40억원가량의 피해가 났다.
구제역 끝났지만 시름 여전
돼지값 두 배 올라 재입식 꿈도 못 꿔
3월 16일 양산지역 축산농가에 대한 이동제한 조치가 풀렸다. 양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구제역 파동이 사실상 종료된 것이다. 언론에서 구제역 관련 기사들이 하나 둘 사라졌고, 시민들의 대화 속에도 더 이상 구제역은 없었다. 하지만 농가들의 시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 씨는 “어미돼지 가격이 지난해 60~7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올라 잃어버린 돼지를 채워 넣을 수가 없어요. 재입식은 생각도 못하고 살아남아 있는 어미돼지로 최대한 새끼돼지를 늘려갈 생각입니다. 하지만 돼지 전체를 살처분한 이웃 농가는 어떻게 견뎌나갈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제역 피해농가 11농가 가운데 돼지를 모두 잃어 재입식이 필요한 농가는 4농가. 이 중 2농가만이 재입식을 준비하고 있다.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컸을 뿐 아니라 이번 기회에 축사보수와 소독 등을 통해 철저한 구제역 대비책을 마련한 상태에서 입식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에 쉽사리 입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 노력 무엇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구제역이 농가 때문이냐…
보상금 지급 미적, 삭감 방침까지 정해
보상금 지급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액의 40% 정도만 선지급금 형태로 구제역 파동 당시 지급됐고, 나머지 60%는 감감무소식이다. 매달 융자금이나 사료값으로 지출이 되다보니 40%의 보상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다.
하지만 구제역 방역을 소홀히 한 농가에 보상금을 최대 80%까지 삭감한다는 정부 방침이 정해져 보상금만 기다릴 수도 없는 실정이다. 마치 축산농민이 구제역을 몰고 온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농민들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서 씨는 “살처분 보상금이 100% 지급되더라도 농가의 피해를 충분히 보상해 주지 못합니다. 돼지는 임신기간이 짧아 1년에 새끼를 2.5마리 낳을 수 있어요. 그러면 어미돼지 한 마리당 최소 10마리는 낳는다는 건데, 새끼돼지 시세를 30만원으로 산정하면 750만원 상당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살처분된 어미돼지 한 마리당 70~80만원 정도로 보상해 주고 있어 사실상 농가들의 피해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100% 지급되지 않을 수 있다니 그저 답답할 노릇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농민들의 마음을 더 답답하게 하는 것이 있다. 축산업허가제를 도입한다는 농림수산식품부의 발표 때문이다.
갑작스런 축산업허가제 발표
지원방안 없이 농가 비용부담만 가중
단위 면적당 사육두수, 방역시설, 분뇨ㆍ폐사축 처리시설 등 정부 허가 기준을 충족한 농가에 한해서만 축산농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내년부터 2015년까지 농가규모에 따라 연차적으로 적용해 축산업허가제를 의무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축산업 운영에 관한 관련 법령이 없어 상당수 농가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왔던 게 사실. 양산 역시 무허가 건축물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농가가 있을 정도로 운영지침과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 씨는 “친환경축산과 가축방역강화 등을 통해 축산업을 선진화시키자는 기본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실질적 지원방안 없이 과도하게 농가를 규제하고 비용부담을 안기게 되면 축산업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농민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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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제역 파동에 큰 피해를 입었던 상북면 축산단지 앞에서 최영호 시의원이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서명제 씨를 만나 보상금 조기지급 방안과 축산업허가제 발표에 대한 농가들의 입장을 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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