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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사십대
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사십대

양산시민신문 기자 383호 입력 2011/06/07 10:24 수정 2011.06.07 10:22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고정희 시인

전남 해남 출생. 한국신학대학 졸업. 《현대시학》에 〈연가〉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목요시’동인으로 활동했다. 1983년 《초혼제》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1년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 사고로 작고.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평민사, 1979),《실락원기행》 (인문당, 1981),《초혼제》 (창작과비평사, 1983),《이 시대의 아벨》 (문학과지성사, 1983), 《눈물꽃》 (실천문학사, 1986),《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사, 1987),《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창작과비평사, 1989),《광주의 눈물비》 (도서출판 동아, 1990),《여성해방출사표》 (동광출판사, 1990),《아름다운 사람하나》 (들꽃세상, 199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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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양산시민신문 
이 시는 삶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군요.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픔 혹은 외로움의 그림자가 짙게 그려져 있습니다. 외로움의 체온을 높여 타인에게 손을 내밀었던 시인은, 지리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타계하여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고정희-사십대’의 시는 아직도 시인이 펜을 들었던 그 시각, 그 풍경에 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또 어떻게 나를 보내왔는지 십대와 이십대, 삼십대를 되돌아보는 사십대. 제가 그 지점에 서 있어서 일까요.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는 <들녘>. 거기서 내미는 시인의 손길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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