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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희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양산문인협회 감사 하북면 지산리 | ||
ⓒ 양산시민신문 |
나는 선생님들이 숙제 검사를 하듯이 날마다 논, 밭을 둘러본다. 한 평 남짓한 부추 밭부터 매고 자리를 옮긴다. 이른 봄 남편이 모종을 사다 심은 딸기와 곤달비 밭에도 호미질을 하고 잠시 숨을 고른다.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밭두렁에 돌나물이 가득이다. 나뭇가지와 대나무 가지를 던져둔 밭둑이라 자세히 보지 않고 늘 지나쳤던 탓에 나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저만큼 자랐나 보다. 다행히 던져둔 나뭇가지들이 연화재배(그늘을 만들어 식물을 연하게 키우는 것)역할을 했다. 덕분에 6월이지만 아주 부드럽고 꽃대가 올라오지 않았다. 얼른 일어나서 한소쿠리 걷었다. 시장에 가면 많이 있겠지만, 요즈음 들판에서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돌나물이 입맛을 살려주고 성인병에 좋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운동 나오는 사람들이나 누구 할 것 없이 보이는 대로 다 걷어가기 때문이다. 통통하고 잎이 뾰족한 것이 노란 별꽃까지 피우면 정말 예쁘다. 돌이나 나무 같은 것에 심어 두어도 잘 자란다. 다른 다육식물처럼 건조해도 잘 자라기 때문에 야생화 애호가들의 손길도 피할 수 없다.
찹쌀 풀을 끓여 국물을 만들어서 물김치도 담고, 오늘 점심 때는 당장 된장으로 무쳐서 비빔밥을 해먹을 생각을 하니 침이 고인다. 다듬고 난 뿌리들을 밭 가장자리에 뿌린다. 굳이 심지 않아도 며칠 후면 뿌리를 내릴 것이다.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돌이나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고 돌나물이라 하지 않았을까? 약이 귀했던 시절에는 벌레에 물렸을 때 돌나물을 돌에 찧어 즙을 발랐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보면 예전에는 밭작물보다 산과 들에 저절로 났던 나물들의 종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소쿠리만 들고 나가면 아침저녁 찬거리를 수북이 뜯어올 수 있었으니까.
욕심내서 돌나물을 걷고 일을 했더니 땀이 주르륵 흐른다. 노동으로 흘린 땀은 언제나 기분을 상큼하게 한다. 들녘을 가로지르는 바람 한줄기 땀 위로 지나간다. 밭두렁에 핀 아카시아 꽃과 찔레꽃이 하얗게 웃는다. 나도 순진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웃어 본다.
6월의 하늘은 참 맑다. 푸른 나무로 가득 찬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퍼질러 앉아 있던 엉덩이로 땅의 축축함이 전해져 오면서 좀 많이 쉬었다는 생각을 하는 찰라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누가 오이하고 호박을 이렇게 높이 심어라 카더노”
‘그기는 땅이 습해서 그리 둑을 해서 심어야지 안그라먼 장마철 되면 뿌리가 썩는다카이’
밭에 오면 언제나 남편과 티격태격 이다. 다음에는 ‘혼자 오고 말지’ 하면서도 늘 함께 온다. 촌일이라는 게 혼자서는 도저히 재미가 없다. 서로 타박하면서 잘난 체해도 둘이 해야 일이 쑥쑥 들어간다.
고추 밭에 웃거름을 주던 남편이 또 궁시렁거려서 가보니 노루가 그랬는지 고추모가지를 댕강 꺾어놓았다. 발자국이나 배설물을 보니 분명 토끼나, 염소, 노루, 고라니 같은 종류다.
그러나 근처에는 방목하는 염소나 토끼는 없으니 고라니나 노루일 것 같다.
눈 덮인 겨울에는 상추도 뜯어먹고 겨울초를 먹어치워도 ‘그래 같이 먹고 살자’ 하면서 귀엽게 봐 주었는데, 지금은 온 산천이 온통 먹을거린데 하필이면 마을까지 내려와서 텃밭에 있는 고추에 입을 댔는지 슬그머니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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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지나가던 축사아저씨는 노루가 못 오게 그물을 쳤다면서 우리더러 가두리를 해라고 권한다. 남편은 웃으면서 “노루가 설마 이거 다 묵겠능교, 마을까지 내려올 줄도 아는데, 저거도 양심은 안 있겠능교”
축사아저씨도 따라 웃으면서 야생조수들의 횡포를 꼬집어 이야기 한다.
새들이 흙에 묻힌 씨앗들을 빼먹는 것도 모자라 뾰족 뾰족 겨우 고개를 드는 새싹까지 싹둑 잘라 먹어치우는 염치없는 짓도 한다고 했다. 듣고 있던 남편이 다시 말을 받는다. 예전에는 가을에 감을 딸 때도 까치밥을 남겨 놓을 정도로 야생조수들을 생각 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산에 가면 나물이고 도토리고 할 것 없이 먹는다 싶으면 남김없이 다 가져오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는 인과응보라면서 일부 등산객들의 싹쓸이 산행을 말했다.
건너편 논 둑가 경운기 옆에는 무논에서 일하는 주인을 기다리다 심심해진 강아지가 졸고 있다. 모내기 준비를 끝낸 물이 가득한 논에서는 개구리들이 먼저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 무슨 놀이공원인듯이 아주 자기들 세상이다. 밤이면 또 얼마나 요란스런 음악회를 열지 벌써부터 귀가 간질거린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고추, 호박, 오이를 심어둔 밭이 저수지가 되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고추모종을 심으면서 물을 준다고 도랑물을 밭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물꼬를 떼면서 어설프게 둑을 막았던가 보다. 바람에 비닐하나가 날아가 도랑물을 가로막으면서 물꼬가 터지고 도랑물은 그대로 온종일 밭으로 들어왔던가 보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신발을 벗고 맨손으로 물꼬를 막고 도랑물을 틔우느라 생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집에 와서 보니 손톱 밑에 흙이 까맣다. 도랑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와 비닐이 도랑물줄기를 돌려서 밭이 논이 되었는데, 4대강은 다가올 여름철 홍수에 잘 견딜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모임에서 백일장 작품심사를 하느라 조용한데, 휴대폰문자 알림소리가 크게 들렸다. 시선이 쏠리자 멋쩍은 휴대폰주인은 문자내용을 알려준다.
낙동강 해평 취수장 가물막이가 무너지면서 구미, 김천, 칠곡에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그 지역 주민들은 때 아닌 물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곳에다 문우가 속한 다른 동호회원들이 돈을 모아 날마다 생수를 보냈는데, 오늘 그 지역 수돗물공급이 재개되어 생수 보내는 일을 마무리하면서 결산하고 남은 돈의 액수를 문자로 알려줬다고 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또 부는 대로 그냥 두어도 강물은 흘러 간다.
4대강 사업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외쳤는데, 하천둔치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실직을 감안했는지 묻고 싶다. 지난해 배추 값 폭등이 4대강과 무관함을 증명이라도 할 듯이 그렇게 심어라고 부추긴 배추 값이 지금은 어떤가?
땅덩어리도 좁은데 1차 산업으로 돈 벌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던 지인의 말이 백번 지당하다. 처음부터 큰 돈 벌 생각으로 농사를 시작한 게 아니라서 천만 다행이다.
숙제검사를 끝낸 선생님처럼 흙 묻은 신발을 털고 저녁노을을 감상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하천 둑에는 누가 심었는지 보리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단지 내가 농부라서 그럴까?
저만치 다리 위에서 도랑 쪽으로 양동이를 던지고 다시 올리고를 반복하는 게 보인다. 다가가 보니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모래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들이다. 차를 동원하면 불법이지만 손으로 퍼서 가져가는 것은 괜찮다면서 집수리하는 데 필요한 모래를 건지는 중이라고 했다.
요즈음은 작은 하천들도 모두 정비를 해서 옛날처럼 모래 한 대야를 펄 수 있는 곳도 잘 없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지나가던 70대로 보이는 촌로도 다슬기를 잡아서 해마다 용돈을 손에 쥘 수 있었는데 이제는 도랑에서 미꾸라지도 다슬기도 찾아 볼 수 없다면서 옛날 실개천이 그립다고 말했다.
도로변에는 노란 금계국이 춤을 춘다. 송엽국도 돌 틈에서 방긋 웃고 있다. 우리 양산은 어딜 가나 지금 꽃잔치다. 어디 도로뿐인가 담장에 걸터앉은 덩굴장미는 또 어떤가?
‘산과 들에 핀 꽃들은 하얗게 수줍게 웃는데,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화려한 꽃들이 유혹한다.’며 괜히 잘생긴 꽃들을 타박하니 남편은 산과 들에 핀 하얀 꽃들이 향기가 더 좋다며 토끼풀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 건넨다.
그래 행복이 뭐 특별하겠나? 다 각자의 향기를 가지고 자신의 생활을 즐기며 사는 게 최고의 행복이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