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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부르즈가 속해 있는 코카서스 산맥은 러시아어로 카프카즈(Kavkas)라 불리는데 구 소련 남부의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산계와 지역의 총칭이다. 헬레니즘문화를 꽃피운 세기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넘어 인도까지 진출했고 세계적인 탐험가 스웨덴의 스벤헤딘도 이 고개를 넘었다.
엘부르즈는 코카서스 산맥의 주봉으로 북위 43°21′, 동경 42°26′에 위치한 서봉(5천642m), 동봉(5천621m)등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사화산이다. 따라서 적설량이 많은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등반 도중 화산활동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해발 4천8백m의 파스투초프록 부근은 화산활동이 멈추면서 돌이 많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러시아의 카바디나-발카리아 자치공화국에 속해 있으며, 우랄산맥의 남쪽 중앙아시아 경계에 담수호로 유명한 흑해와 러시아인들의 마음의 강인 볼가강이 흘러드는 카스피해를 양분하는 코카서스산맥에 솟아 있는 최고봉이다.
일반적으로 몽블랑(4천810m)을 유럽 최고봉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지리학적인 면에서 보면 코카서스 산맥의 주봉인 엘브루즈가 유럽의 최고봉이다. 등반을 하는데 기술적인 면에서는 별로 어려움이 없지만 역시 해발 5천m를 넘는 고산이니 만큼 고소적응이 등반의 중요한 관건으로 작용한다.
엘브루즈 등반을 마치고 4~5일의 여유가 남는다면 부근의 동구조른, 시헬다(4천320m), 우쉬바(4천710m)와 같은 봉우리를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수직벽의 표고차가 1천미터 이상으로 등반성이 매우 높은 봉우리로 알려져 있는 곳들이다.
등반역사
엘부르즈의 공식적인 초등은 1829년 엠마누엘 원정대의 현지 가이드인 카쉬로프(K. Khashirov)가 북면을 통해 오른 동봉 등정이며, 1874년 그로브(F. C. Grove)가 이끈 영국팀이 남면을 통해 서봉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역 발카리아 사람들은 아히야 쇼타예프(Akhia Sottaev)가 1849년 서봉을 초등했다고 주장한다.
쇼타예프는 당시 61세로서 엘부르즈 지역의 유명한 가이드였는데, 1874년 85세의 고령에 또다시 서봉을 올랐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9년 소련의 소빈터스포츠에서 개최한 소련 코카서스 국제 산악캠프의 공식 초청에 의해 등반이 이루어지기 시작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9명의 한국엘부르즈 스키원정대는 2009년 7월 29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모스크바국제공항은 마치 지방의 공항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다소 어두워 보인다.
조금은 낯선 러시아의 첫인상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 한적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는데 친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제법 큰 호텔인 듯 한데 무거운 카고백을 옮겨주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원정대의 모든 짐을 우리가 직접 옮겨야했다. 머나먼 모스크바에서 어설프게 하룻밤을 보냈다. 등반을 하려면 다시 국내선을 타고 2시간 동안 날아가야 했다. 물이 좋다는 민버디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수레로 옮겨 승합차에 실고 엘부르즈가 있는 마을로 달리는데 도로 양옆으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평원에 해바라기가 그림처럼 깔려 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웅장한 해바라기 풍경에 잠시 정신을 빼앗겼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3시간을 달려 고도 2천1백m의 텔스콜(Terskol)에 도착하니 여름인데도 여름같지 않게 선선하다. 러시아의 샤모니라 할 수 있는 이곳 볼프람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가올 등반에 대한 준비를 하나씩 챙겨본다. 산간마을 텔스콜은 여름인데도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20여분 이동하면 아자우(Azau)가 나오는데 베이스 캠프가 되는 바렐(Barrel)대피소까지 갈려면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한다. 아자우에서 바렐대피소(3천8백m)까지 등반장비가 들어있는 무거운 카고백을 이동시키는 데 하루를 다 보냈다. 바렐대피소에서 바라보는 엘부르즈의 서봉과 동봉은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젖가슴처럼 포근하게 보인다.
우린 바렐대피소에서 진을 치고 고소적응을 위해 파스트쵸브록(4천8백m)까지 고소순응 스키등반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현지가이드와 함께 기상예보를 챙기며 등정일자를 잡는데 주변 날씨가 예측하기 힘들다. 눈보라가 쳤다가 금세 날씨가 맑아지면서 고독한 인간을 혼돈 속으로 빠뜨린다.
어느 알피니스트가 한 말이 생각난다. 새털같이 많은 날에 날씨가 나쁜 날보다는 좋은 날이 더 많으니 고산등반은 인내할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것. 성공적인 스키등반을 위해서 많은 인내가 필요함을 느낀다. 정상갈 준비를 마치고 러시아 현지가이드인 이그루를 찾아가 일기예보를 받아보니 8월 3일이 정상 등정하는 데 가장 좋은 기상이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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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정가능한 날씨를 기다리며
대원들은 등반의 성공을 위해 바렐대피소 안에서 배낭을 꾸리고 장비를 꼼꼼하게 챙기고 확인점검까지 한다. 정상 등정을 하루 앞둔 8월 2일 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새벽까지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일기예보가 빗나간 것 같다. 옆에 자고 있던 가이드 이그루에게 원망 섞인 말투로 날씨 때문에 등반이 어렵겠다고 하니까 태평스럽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2시간쯤 지나니 도깨비같이 하늘이 열리며 날씨가 쾌청해진다. 여태껏 고산등반을 해오면서 이렇게 갑작스레 날씨가 쾌청해지는 광경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곤한 잠에 빠져있는 대원들을 깨워 등반에 나섰다. 별이 총총한 새벽녘 정상을 향해 가파른 설사면을 스키등반으로 올라가는데 설면이 얼어붙어 씰(스키바닥에 붙이는 제동용 천)을 차고 올라도 균형잡기가 굉장히 힘들다.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며 동봉과 서봉 사이의 새들(Saddle-5천3백m)이라고 부르는 데 까지 올라갔다. 새들(Saddle)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러시아 가이드 3명이 우리들에게 오더니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가라고 강요한다. 이유를 물으니 시간상 정상 갔다오기가 어려우니 안전을 위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친 사람도 없는데 하산을 종용하니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다. 3백m 정도만 더 올라가면 정상인데 여기서 돌아서 내려가라고 하니 막막했다. 시계를 봤을 땐 아직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항의를 하다가 그들을 무시하고 등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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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정보다 어려운 하산길
날이 어둑해지면서 사방천지를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먼저 간 대원들은 플래그를 보고 잘 내려간 모양인데 나는 많이 내린 눈으로 인해 플래그를 확인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그 순간 아래쪽에 있던 김동호대원이 그 쪽으로 오라고 나를 부른다. 아무 생각없이 갔더니 크레바스(눈의 갈라진 틈)다. 보는 순간 위험하다고 어서 빠져나오라고 한 뒤 설상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겨우 찾아 내려갔다. 하산이 등산보다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다.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를 등반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기상정보에 밝아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 높진 않지만 자칫 잘못하면 의외로 힘든 등반이 될 수 있는 곳이 엘부르즈다. 우리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근처 차겟봉의 야생화트레킹까지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