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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송곳이 놓여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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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 한줄의 노트]송곳이 놓여 있는 자리

양산시민신문 기자 388호 입력 2011/07/12 10:22 수정 2011.07.12 10:12



저녁에 동그란 상처를 가진 이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 라면상자에서 꺼낸 서류철을 보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한다
송곳으로 뚫어서 묶어놓은 명단의 이름은 긴 밭고랑처럼 길고 순하다
송곳 하나 후빌 땅이 없어서 마음에 구멍을 하나씩 만들고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이들은 죽어서 검은 표지의 송곳 구멍을 하나씩 갖게 되었다
나는 오늘 송곳 끝에 매달린 빛을 보다 붉은 핏자국을 하나 떨어뜨렸다
저녁 하늘에 뚫어놓은 수많은 구멍의 빛을 보다 책상 위의 핏자국을 하나 지운다
구멍이 많은 하늘이 빛을 흘리고 있다







이기인 시인

1967년 경기 인천 출생. 1988년 서울예술대학 졸업.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ㅎ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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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양산지부 회원
ⓒ 양산시민신문 
모두가 세상 어디 자신의 뿌리 하나 뻗으려고 몸부림하는 삶. 그러나 결국 땅 한 평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겠지요. 평생 임대와 월세, 전세로 전전하면서 이 생을 마무리 하는 사람도.

이 시의 화자는 <라면상자에서 꺼낸 서류철을 보며>/ <송곳 하나 후빌 땅이 없어서 마음에 구멍을 하나씩 만들고>/ <죽어서 검은 표지의 송곳 구멍을 하나씩 갖게> 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군요.

송곳에서 연상되는 동그란 구멍은 어두운 하늘에서 새어나오는 별빛이나 노을빛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읽는다면 별빛이나 노을빛은 세상에 대한 상처이자 피흘림만 같습니다. 순한 사람들의 상처가 붉게 각인되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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