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는 비장애인도 살기 좋다고 한다. 현재 양산에 등록된 장애인은 1만2천여명으로 전체 인구 26만명의 비율로 따지자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경제권, 이동권, 교육권 보호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지만 여전히 장애인복지정책은 일시적 시혜와 동정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어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선진복지사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수다. 살기 좋은 지역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본지는 타 도시의 장애인복지사업 우수사례를 통해 장애인복지사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알아본다.
① 장애인이 자유롭게 씻을 권리 보장
경남 함양군 장애인전용목욕탕
② 장애인의 풍요로운 문화생활
③ 장애인편의시설은 장애인이 직접 사전점검
④ 장애인의 여가생활 공간 제공
⑤ 장애인 복지,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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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을 권리’. 비장애인에게 새삼스럽지 않은 당연한 권리가 장애인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권리로 외면받고 있다. 청결을 유지하고 단정해보이고 싶은 욕구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당연한 일이지만 마음놓고 씻기조차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대중목욕탕’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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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양산시는 지난해 9월부터 어곡동에 위치한 유산주민편익시설 목욕탕을 임대해 중증장애인전용목욕탕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용이라고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주 1회 하루 동안만 장애인이 사용 가능하다. 이마저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대중목욕탕이기 때문에 탕 높이가 높아 이용이 불편하다.
또 장애인 차량운행 또한 적어 실제 장애인들이 목욕탕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장애인들의 안전문제, 목욕탕으로의 이동문제 또 인력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장애인전용목욕탕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함양군은 장애인들의 기본권리 중의 기본, 자유롭게 씻을 권리를 위해 도내 최초로 지난 2004년 장애인 전용 목욕탕을 건립·운영해 장애인들의 불편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함양군의 장애인 수는 모두 3천530여명. 하루 200여명의 장애인이 이용하는 목욕탕은 장애인 전용차량을 전 읍ㆍ면으로 순회 운행해 장애인은 물론이고 많은 군민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열악한 재정여건 속에서도 장애인 목욕탕을 운영하는 등 소외계층을 위한 함양군의 봉사행정은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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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안전한 목욕탕, 서비스 모두 ‘만족’
“전국 최초,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습니다”
지난 2004년 개설된 함양장애인전용목욕탕은 어디에도 없는 ‘최초’였기에 설립 당시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담긴 결과물로 인정받고 있다.
함양장애인전용목욕탕은 장애인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에서부터의 출발이 아닌 실제이용자인 장애인들로부터 출발했다. 설립 초기 정책 관계자들과 일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도 장애인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설득에 나섰다. 물론 시위 등 강경책도 펼쳤다.
시설설계에 있어서도 적극 참여했다. 장애인 모두에게 편리한 목욕탕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목욕탕에서 가장 중요한 대중탕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들이 직접 탕 속에 수십 번 들어가 보며 위치와 탕 높이 등을 최적화 시켰다. 어떤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든지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목욕 동선도 충분히 확보했다.
그 결과 하루 200여명의 장애인들이 찾을 정도의 인기 있는 장애인전용목욕탕이 완성됐다.
연면적 661㎡(200평)인 목욕탕건물에는 1층 남ㆍ여 대중탕과 가족탕 3실, 이ㆍ미용실 1실, 2층은 주간보호센터, 3층은 운동을 할 수 있는 쉼터가 들어서 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주 4회 운영되는 목욕탕은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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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군장애인목욕탕에는 장애인의 편의에 맞춘 남·여 대중탕뿐만 아니라 가족탕이 마련돼 있다. 가족탕은 중증장애인과 가족이 함께 안전하고 편리하게 목욕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췄다. |
ⓒ 양산시민신문 |
“장애인이란 이유로 목욕탕을 찾기가 꺼려져 1년 중 10번도 채 목욕탕을 이용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2~3번은 목욕탕을 찾는다”는 김순이 씨(50, 지체장애 3급)는 “목욕탕을 가더라도 사람들이 보고 놀랄까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데 이곳에서는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목욕을 할 수 있어 좋다”고 즐거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목욕탕은 ‘쉼터’이자 ‘소통의 장’↑↑ 3층 쉼터에는 체력단련 운동기구, 물리치료기, 구대 등의 기구가 마련돼 있어 목욕을 마친 장애인들이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양산시민신문
이곳을 찾는 장애인들은 목욕과 함께 여가시간도 보낼 수 있다. 체력단련, 재활치료, 건강검진 서비스가 제공되는 목욕탕은 단순한 목욕 개념에서 벗어나 장애인들의 ‘쉼터’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
1층에서 목욕을 마친 사용자들은 체력단련 운동기구, 컴퓨터, 당구대 등의 기구가 마련돼 있는 3층을 이용해 재활ㆍ여가 서비스를 받는다. 또 텔레비전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좌석이 마련돼 있어 장애인들끼리 담소도 나누며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2층 주간보호센터에는 간호사가 항상 배치돼 있어 정기적으로 혈당과 혈압 등 기본적인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목욕탕은 10개의 면에 매일 35인승 버스를 운행해 사용자들의 원활한 이용을 돕고 있다. 또 함양군 장애인 복지관과 연계, 매일 셔틀버스를 운행해 복지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목욕탕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목욕탕 내의 직원은 복지센터 종사자로 목욕탕 관리직과 버스 운전 기능직 1명이 전담하고 있으며, 그 외 장애인행정도우미, 장애인복지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 다양한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도 한 몫하고 있다.
여환영(68, 지체장애 4급) 씨는 “목욕탕에만 오면 다른 장애인들도 많이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어 즐겁게 온다”며 “병원에 가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2층에서 하고 있는 건강검진은 아주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터/뷰/ 서윤권 함양군 장애인복지관 관장
“씻을 권리는 모든 이들의 기본적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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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서윤권 함양군장애인복지관장 전) 함양군지체장애인협회 회장 | |
ⓒ 양산시민신문 |
서 관장은 함양군장애인협회에 가입해 회장직을 맡은 후 3년 동안 군에 등록된 장애인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문조사를 실시, 장애인이 제일 불편을 느끼고 원하는 것을 조사했다.
설문결과 1위는 목욕. 현재도 그렇지만 90년대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너무 커서 비장애인과 함께 목욕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서 관장은 장애인도 사람이라 자유롭게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목욕탕 건립을 결심했다.
당시 장애인 전용 목욕탕 건립을 추진하고 나서자 주위에서 ‘도내 어디에도 건립한 적이 없다’며 모두가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 관장은 장애인들을 거부하고 싫어하는 대중목욕탕 업소 주인들과 지방의원들에게 장애인들의 심정을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신문에 돌돌 말린 회원들의 의수족을 펼쳐 보이는 시위까지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의수족 퍼포먼스는 장애인과 함께 목욕탕을 쓸 경우 비장애인이 느끼는 감정을 의원들도 느껴보라는 심정으로 펼쳤고 이후 의원들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서 관장은 회상했다.
이후 군비를 보조받아 목욕탕을 건립했으며 현재도 서비스 공간을 꾸준히 확장해나가고 있다.
서 회장은 “당시 5만도 안 되는 인구수의 함양군이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 “장애인의 비율이 적든, 많든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