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는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는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나혜경 시인
1964년 전북 김제 출생. 1992년 <문예한국>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2003년 시집 <무궁화, 너는 좋겠다> (문학과경계), 2010년 <담쟁이덩굴의 독법> (고요아침)이 있다.
-----------------------------------------
![]() | ![]() | |
ⓒ 양산시민신문 |
겨울에 앙상하게 말랐다가 봄에 다시 잎을 매달고 올라서는, 그 반복적인 과정이 <완독>을 향해 나아가는 지적 욕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렇듯 <독서>가 가져다주는 매력적인 비유방식은 의식하던 하지 않던 간에 앞으로도 여러 가지로 변주되거나 모색되겠지요. 그럼에도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인상적이어서, 담과 지붕을 초록으로 뒤덮을 어느 여름을 기다리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