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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초대 수필]만원의 행복
오피니언

[초대 수필]만원의 행복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1/08/23 09:58 수정 2011.08.23 09:57



 
↑↑ 구추영
황산초등학교 교사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회원
ⓒ 양산시민신문 
퇴근 무렵 자동차에 시동을 켜는데 주유등에 주홍빛 색깔이 선명하다. 아침 출근할 때부터 주유등에 불이 들어와 신경이 쓰이더니, 또 나타나서 협박을 하고 압력을 가한다. ‘이게 다 남편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니, 신경질이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일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여보 차 어디에 있니? 차를 안 가지고 와서 너 차 좀 이용할게” “내 차에 기름이 다 되어 가는데 돌아올 때 주유 좀 하고 오세요” 골프연습장으로 바쁘게 나가는 남편에게 기름을 넣어 오라고 주문을 하고 미덥지 않아서 또 한 번 신신당부를 하였다. 평소에 차에 기름이 넉넉하게 있어야 안심이 되고, 기름이 아슬아슬 하게 있으면 불안해서 운전을 하는데 신경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지나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보자마자,

“기름 넣었어요?”

“아직은 내일까지 갔다 오는데 문제 없겠더라”

“무슨 소리? 아까 퇴근할 때 보니까 맨 밑에 눈금 가까이 와서 딸랑딸랑 했는데, 자기가 좀 더 썼으니 바닥에 있을 거잖아요?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지 쌀독에 쌀이 다 떨어져야 쌀 사러 가는 것처럼 사람이 어찌 그리 준비성이 없어요?”

“괜찮아. 걱정마라. 내일 두 번도 충분히 왔다 갔다 할 수 있겠더라”

“올 때 기름 넣어 오라고 그만큼 말했는데 흘려들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평소에 미리미리 준비하고 챙기고 하는데 자기는 왜 그래요?”

나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아버지와 남편을 비교하면서 신경질을 내었다. 남편은 매사에 신중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동차 주유는 제때에 하지 않고 꼭 주유등이 경고를 해 줘야 된다. 그래서 한 번씩 이런 점이 못마땅할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이 바빠서 주유소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퇴근길에 주유소에 들릴 요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직장근처 가까운 곳에 주유소가 없어 집 부근까지 가야 될 형편이다. 핸드백을 열고 지갑부터 찾았다. ‘어머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침에 헐레벌떡 나오느라 침대 맡에 휴대폰을 두고 나왔는데, 지갑까지 없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어제 저녁 마트에 다녀오면서 지갑을 다른 가방에 넣고 갔다가 핸드백에 옮겨놓는 것을 깜박한 것이었다. ‘이 일을 어찌하나? 진작 지갑을 놓고 온 걸 알았다면 동료한테 빌리기라도 했을텐데 이게 웬 황당한 일인가?’

일단은 차를 움직여 서서히 출발을 해 보았다. 잠시 뒤 몇 발 움직이지 않았는데 또 주홍빛 등이 켜졌다.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점차 주유등에 불이 켜지는 시차가 좁아져 올 때 마다 내 마음은 더욱 긴장되어 가슴이 콩닥콩닥해진다.

ⓒ 양산시민신문


괜스레 요즘 들어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까지 탓하게 되었다. 돈도 없고 현대인의 무기이자 필수품인 휴대폰까지 없으니, 더욱 불안하고 겁이 덜컥 나기도 하였다.

‘만약에 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시동이 꺼지고 서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휴대폰이 있으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이라도 할텐데… 아니면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를 할 수도 있고…’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계기판의 눈금도 자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여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도 띵해지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 충분히 갈 수 있을거야. 어제 남편이 왕복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설마 거짓말 했을라고.’

예전에 주유고 눈금이 저 밑에 있어도 얼마는 달릴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 기억까지 더듬으며 나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어쩔 건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데… 바보같이 불안에 떨고 있는 내 자신이 미웠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추자, 갑자기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노래를 들으면 좀 마음이 풀리고 나아질 것 같아서다. 오른손으로 카세트테이프가 담긴 박스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테이프 몇 개 집어 올리니, 반으로 접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내가 잘못 본 것일까?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몇 초간 머뭇거리며 손으로 만져보았다. 갑자기 황홀해지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긴장된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며칠 전 딸아이를 데리러 갈 때 혹시나 하고 준비해 간 돈이었다. 밤늦게 학교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딸아이에게 간식을 사 먹이려고 준비했던 것인데, 그 날은 아이가 간식 생각이 없다 하여 박스 안에 접어두었던 것이었다.

‘역시 나의 행운의 여신은 나를 배반하지 않는구나! 호호호!’ 신호등이 지나니 붉은 색 간판의 주유소가 나타났고, 주유원이 달려와서 인사를 꾸벅 하였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만원어치만 넣어주세요. 지금 바빠서요”라고 말했다.

자동차의 시동을 켜고 기분 좋게 페달을 밟으니 만원을 꿀꺽 삼킨 차는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오늘의 무용담을 신나게 털어 놓았다.

“차에 꼭 만 원 짜리 한 장은 넣어 두고 다니세요. 돈 만원이 그렇게 귀중하고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흐흣! 오늘 집에 까지 무사히 와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결국 나 때문이네요? 엄마가 내 간식 사 주려고 준비한 것이니…”

“엄마, 핸드폰도 꼭 챙기고 다니세요. 현대인의 필수품 제1호랍니다”

오랜만에 식탁에 모여 앉은 네 식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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