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는 비장애인도 살기 좋다고 한다. 현재 양산에 등록된 장애인은 1만2천여명으로 전체 인구 26만명의 비율로 따지자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경제권, 이동권, 교육권 보호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지만 여전히 장애인복지정책은 일시적 시혜와 동정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어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선진복지사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수다. 살기 좋은 지역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본지는 타 도시의 장애인복지사업 우수사례를 통해 장애인복지사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알아본다.
① 장애인이 자유롭게 씻을 권리 보장
② 장애인의 풍요로운 문화생활
③ 장애인편의시설은 장애인이 직접 사전점검
전남 목포 ‘장애인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
④ 장애인의 여가생활 공간 제공
⑤ 장애인 복지,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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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장애인들이 생활하기에 문 밖 세상은 불안하기만 하다. 도로의 턱은 높고, 공중화장실은 비장애 위주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목포시를 시작으로 여러 시ㆍ군이 <장애인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를 제정해 이러한 불편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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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지체장애 1급인 김해성 씨는 지난 3월 개관한 국민체육센터를 찾았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시설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출입구 앞 인도 턱이 높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휠체어로 출입조차 힘들었다. 또 장애인전용화장실은 남녀공용으로 하나밖에 개설돼 있지 않았고, 이마저도 화장실 공간이 좁고 모서리에 각이 져 있어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하기는 버거웠다.
공공건물을 비롯한 각종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에 따라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남 목포시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된 <장애인편의시설 사전점검 조례>는 2004년 목포지역의 여러 장애인단체와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주민청구 방식으로 제정한 조례다.
장애인편의시설은 권장 아닌 의무
지난 2004년 1월 전남 목포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여부를 건물 준공 전에 사전 점검토록 하는 조례를 제정, 공포했고 이후 같은 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제정된 <목포시 건축물의 허가 등에 있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사항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이하 조례)는 건축허가과정에서 장애인편의시설의 설치가 제대로 설계도에 반영되었는지, 설계대로 시공하였는지를 건축물의 허가, 시공 및 사용승인 전에 민간점검요원이 직접 사전 점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조례다.
2007년에는 조례개정을 통해 건축물뿐만 아니라 공원, 도로까지 사전점검 대상에 포함시켜 장애인들이 편의를 도모했다.
때문에 현재 목포시에서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건축물은 준공 허가를 받지 못한다. 이는 건축허가과정에서 오수정화조 처리시설을 별도로 준공검사를 받는 절차와 유사한 제도로 사전점검 결과 적법판정을 받을 때까지 건축허가나 준공검사를 유보한다.
이 조례를 통해 목포시는 편의시설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하도록 해 사회활동참여와 복지를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또 목포시는 최근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이하 BF) 인증제도’를 도입해 주요시설물들이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을 받도록 했다.
편의시설ㆍ이동편의시설의 설치ㆍ관리 여부를 공신력 있는 기관이 평가하여 인증하는 BF제도를 통해 목포시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건축물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이고 있다.
조례 제정이 끝이 아니다. 이같은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실제 어떻게 적용하는가가 관건이다.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거나, 비전문가들의 미비한 점검 등은 오히려 편의시설을 만들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실제 편의시설이 설치되었다 할지라도 실 사용자들이 사용하는데 많은 불편이 따르는 이른바 ‘장애가 되는 장애인편의시설’이 되는 경우도 왕왕 생겨난다.
이에 목포시는 공급자 위주의 편의시설 설치를 사용자 중심의 효과적인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해 사용예정자인 장애인 등의 민간점검요원을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민간점검요원은 모두 10명으로 5인 1조가 되어 활동을 실시한다. 요원들은 시민단체, 대한건축사협회 목포건축사회 등 편의시설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뿐 아니라 사용예정자(시각장애인 1급, 지체장애인 1급)가 반드시 포함되도록 해 사전 점검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점검요원들은 편의시설 점검 교육과 함께 1차, 2차 평가를 통해 선발된다. 또 선발됐다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장애인편의시설사전점검요원 양성교육과 평가를 통해 전문가로 거듭나도록 훈련을 받는다.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목포시는 지난 7월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사항 사전점검제 안내 책자를 펴내 생활환경을 무장애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 역할까지 하고 있다.
조례 제정 이후 현재까지 1천30여개의 장애인편의시설을 사전점검한 목포시는 앞으로 민간점검요원팀을 더 늘릴 예정이다.
시민발의로 조례제정 이끌어 내
조례는 지난 1999년 8월 31일 제정되어 2000년에 발효된 ‘조례청구제도’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조례 제정의 큰 힘이 되었던 목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과 장애인단체는 2000년 경실련이 설립된 이래 사회복지분과에서 3년에 걸쳐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여부를 모니터하고 그 결과 발견된 문제점에 대해 각종 청원을 제기했다.
경실련 장미 사무차장은 “장애인에 관한 많은 복지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제일 우선시 되어야하고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 장애인편의시설이라고 판단했다”며 “무장애 환경은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다니기 편리하고 좋은 환경이기에 여러 시민단체와 힘을 합쳐 조례제정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이 직접 나선만큼 초기에는 일이 쉽게 진행돼지 않았다.
2000년 경실련과 장애인단체는 2년에 걸쳐 목포시내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를 위해 직접 발로 뛰었으며, 당시 장애인편의시설점검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시의회에 찾아가 한겨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03년 초부터 조례제정운동에 돌입, 조례 제정을 위한 기자설명회, 목포시의회 간 간담회 개최 등 여러 과정과 함께 4천708명 시민 서명을 이끌어 낸 결과 드디어 2004년 조례가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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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례제정을 이끌어낸 경실련과 여러 시민단체는 4년 동안 10여차례 간담회와 토론회, 기자설명회 등을 거쳐 이뤄냈다. |
ⓒ 양산시민신문 |
발로 뛰고, 서명 받고… 길었던 4년
당시 경실련 회원이었던 목포시의회 노경윤 의원은 “조례 제정 당시 수년간 시민들이 발로 뛰어 장애인편의시설 조사와 발표를 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친 것이기에 의미가 깊다”며 “풀뿌리 시민운동의 좋은 선례로 시민과 목포시가 만든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또 “당시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이 조례가 상위법 개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현재 광주광역시를 시작으로 15개가 넘는 광역ㆍ기초자치단체의 조례 제정으로 확산돼 장애인 편의증진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조례 제정 이후에도 제도 운영과정에서 나타난 성과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발전적인 운영방안과 제도개선 방안을 민ㆍ관이 함께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장애인편의시설 사전점검요원 양성교육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